미국은 12일 북한의 핵 동결 해제 선언을 충격으로 받아들이면서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하고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출근을 서두른 백악관, 국무부, 국방부 등의 대북 담당 라인들은 북한 외무성 대변인 담화의 진의를 파악하며 북한이 1994년 제네바 핵 합의로 동결한 영변 원자로를 실제로 재가동할 경우의 대응책을 마련하느라 부산하게 움직였다.
이번 북한의 선언은 미국이 예상하거나 기대했던 내용이 아니다.
북한이 10월 고농축 우라늄 핵폭탄 개발 계획을 시인한 이후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외교적 방법을 통해 사태를 해결한다는 입장을 표명해왔다. 이 같은 입장의 이면에는 대북 중유 공급 중단 등 물리적 제재와 함께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을 통해 외교적 압박을 병행하면 북한이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 중단 요구에 어느 정도 부응할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었다.
따라서 우라늄 핵 개발 계획을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플루토늄 핵 연료봉을 재가동하겠다는 북한의 선언은 미국으로서는 외교적·평화적 해결 정책을 계속 유지해야 하느냐를 시험하는 새로운 도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 정부 내 강경파는 북한의 대결적인 태도를 빌미로 경수로 건설 공사 지원 중단 등 압박의 강도를 더욱 높여가야 한다는 주장을 펼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미국의 새 국가안보전략은 무력 공격을 통한 핵 개발 저지 방침을 밝히고 있다. 미국이 이번 담화를 빌미로 북한을 선제공격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실제 핵 연료봉의 봉인을 뜯는 사태로 발전할 경우 강경파는 더욱 무력사용의 유혹을 느끼게 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온건파는 북한 담화에서 오히려 절박한 대화의 의지를 읽는 것 같다. 북한이 "핵 시설들을 다시 동결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미국에 달려 있다"고 한 것은 파국적인 상황보다는 협상의 자리를 마련하려는 제의로 해석할 만한 여지가 있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문제는 온건파의 주장이 당장 힘을 얻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미사일 선적 선박 나포 사건의 여파가 채 가시지도 않은 상황에서 북한이 핵 동결 해제를 선언하고 나온 터라 미국의 대응은 당분간 경직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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