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북한의 미사일 선적 화물선을 나포한 데는 다목적의 포석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대선을 앞둔 시점에, 테러와의 전쟁이 한창인 지역에서, 북한의 무기 선적 선박에 대해 처음으로 물리적 대응을 한 시공(時空))의 복잡성만큼이나 다양한 의도가 숨겨 있다는 것이다.우선 미국의 행동을 북한의 미사일 수출에 대한 직접적인 봉쇄 작전의 시작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조지 W 부시 정부의 강경론자들은 북한에 대한 경제적 제재만으로는 미사일 수출을 막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지 오래다. 8월 북한 창광신용회사 등 무기 거래에 관여한 기업과의 무역 거래 금지 등 제재 조치를 취해 왔지만, 외화벌이를 목적으로 한 북한의 미사일 수출을 차단하는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특히 부시 정부는 경제적 보상과 북한의 미사일 생산·수출·배치 포기를 교환하는 빌 클린턴 정부의 협상 방식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결국 북한 미사일 문제의 해결은 고강도 대책밖에 없다는 강경론자들의 입김이 불법 선박을 구실로 한 나포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동시에 미국은 북한의 우라늄 농축 핵 개발 시인에 이어 미사일 수출에 대한 증거를 국제사회에 제시, 북한 압박정책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을 수 있다. 또 북한에 핵 개발 계획을 포기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의도일 수도 있다.
대 테러 전쟁을 위한 효과도 노렸을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은 서방동맹의 '항구적 자유'에 참여하고 있는 스페인에 나포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국제적 연대 분위기를 유도했다. 또 이라크 전쟁 개시를 앞두고 중동지역 국가들에는 대량살상무기가 역내로 흘러 들어와 테러 등에 사용될 수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 셈이다.
미국이 예멘의 항구로 진입하기 전 공해상에서 선박을 나포해 예멘 정부를 배려하는 듯한 인상을 준 것도 대 테러전쟁에 협조적인 예멘의 입장을 고려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사건이 보도된 직후 미 행정부 관리는 "그들(예멘)의 따귀를 때릴 것인가, 아니면 그럴듯한 부인을 용인할 것인가의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의 이 계산은 예멘 정부가 북한으로부터 미사일 수입을 공식 시인하고 미국과 스페인에 대해 강력히 항의함에 따라 거꾸로 예멘과 미국의 외교적 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예멘이 반발 조짐을 보이자 백악관은 즉각 "예멘이 추가 무기수입 중단 약속을 어겼다"고 맞받아치면서도 사태 해결을 위해 예멘 정부와 협상에 착수했다. 미 국방부 관계자는 "양국간 무기 거래가 불법이 아니라면 선박을 돌려줄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점들을 인정하더라도 왜 이 시점에 나포를 감행했느냐는 의문이 남는다. 미국은 이미 11월 중순부터 정찰위성 등을 통해 북한의 남포항에서 미사일을 선적한 소산호의 항해 궤적을 파악하고 있어 언제든지 나포가 가능한 상황이었다. 이와 관련 AFP 통신은 "이번 사건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한국의 대통령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혀 북풍(北風)이 아닌 미풍(美風)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또 한국 내에서 반미 기류가 날로 확산하고 있는 것도 무관하지 않을 수 있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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