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커드 미사일을 싣고 가던 북한 화물선 소산호가 인도양의 공해상에서 스페인 군함에 의해 나포됐다. 미국과 스페인 국방부 발표 및 외신 보도를 토대로 당시 상황을 재구성해 본다.
9일 새벽(현지 시간) 동이 틀 무렵 아프리카 동북부 소말리아 반도에서 965㎞ 떨어진 인도양 서단의 소코트라섬 동부 해역 공해상. 스페인 프리깃함 나바라호와 파티노호가 정체불명의 화물선 1척의 항로를 제지하고 나섰다.
이 화물선은 국제해양법이 규정한 국적 표시용 국기를 게양하지 않았고 선체 측면의 선박 이름도 페인트로 덧칠이 돼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이 선박은 프리깃함 2척이 사이렌과 불빛으로 내린 정선 명령에 불복한 채 오히려 속도를 높여 도주하기 시작했다. 스페인 함정들은 이에 대응해 화물선 선수 쪽으로 경고용 교차사격을 가해 강제 정선시켰다. 이어 탑재한 헬기로 화물 조사팀과 이들을 경호할 특수부대 등 20여 명을 괴선박에 투입했다.
헬기를 이용한 선박 강제진입은 무력행사에 가까운 고강도 수단에 속한다. 작전에 나선 스페인 프리깃함 2척은 인도양에서 실시 중인 다국적 대 테러 훈련인 '항구적 자유'에 참가하고 있던 중이었다.
한 미국 관리는 "이 선박에 대한 정선 조사가 미 행정부 최고위층에 의해 승인됐다"고 밝혔다. 미국은 이미 지난달 중순 이 화물선이 스커드 미사일을 싣고 예멘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미국측은 인공위성과 함정을 통해 줄곧 이 배를 추적해 왔다. 화물선은 도중에 중국의 한 항구에 잠시 기항한 뒤 말라카 해협을 경유해 인도양으로 항진해 왔다. 이번 나포작전이 미국의 사전 시나리오에 따라 이뤄졌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스페인 조사팀은 이 배가 캄보디아 프놈펜에 등록돼 있고 내부에서 캄보디아 국기가 발견됐지만 선장을 포함한 선원 21명이 북한인이라는 점에서 북한 선박이라고 판단했다. 배 이름은 소산호로 밝혀졌다. 조사 과정에서 선원들의 저항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다.
화물 기록을 비롯한 관련 문서들은 정리돼 있지 않아 무질서했다. 선장은 화물이 시멘트라고 밝혔지만 조사팀은 화물칸으로 가 4만 포대에 달하는 시멘트 밑에 숨겨진 23개의 컨테이너를 발견하고 개봉했다. 컨테이너는 길이 7m와 14m 등 두 종류였다.
이들 컨테이너 속에서는 완성품 스커드 계열 미사일 15기와 함께 재래식 고성능 탄두 15개, 액체연료 캡슐 23개가 발견됐다. 미사일은 스커드 C일 가능성이 크지만 정확한 종류는 공개되지 않았다.
스페인 조사팀은 미사일과 부품 발견 즉시 미국측에 지원을 요청했다. 주변 해역에 대기하고 있던 미국 순양함 나소호는 폭발물처리반(EOD)을 헬기로 급파했다. 미국팀은 미사일 부품 주위에 부비트랩이 있는지를 우선 수색한 뒤 탄두를 비롯한 위험물질 분리 등 안전조치를 실시했다.
미국은 소산호를 미 공군 및 해군기지가 있는 영국령 디에고 가르시아섬으로 예인하고 있다. 입항하기 전까지 소산호가 적재한 미사일의 모든 위험 요소는 제거된다. 한 미국 관리는 이번 화물선 나포 작전을 "완벽한 승리"라고 표현했다.
/배연해기자 seapowe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