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태극기를 들고 모 정당의 대구지역 유세장을 찾았던 최모(37)씨는 황당한 일을 당했다. 선거관리위원회 단속반이 다짜고짜 "태극기 사용은 불법"이라며 태극기를 빼앗고 조치를 취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기 때문. 최씨는 "국가의 상징물인 태극기 사용조차 막는 것은 지나치다"고 항변했다.■태극기가 불법 도구?
대선전이 달아오르면서 선거운동 관련 법조항들이 해묵은 규제 일변도여서 유권자들의 관심과 참여도를 오히려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표찰 기타 표시물을 착용 또는 배부하거나 하게 할 수 없다.' '어깨띠를 제외하고 모양과 색상이 동일한 모자나 옷을 착용하거나 기타 표지물을 휴대할 수 없다.'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90조, 68조 2항, 105조). 이들 규정 탓에 태극기는 선거운동에서 금지된다. 선거운동용으로 착용할 수 있는 것은 어깨띠가 유일하다. 중앙선관위는 "태극기도, 돼지저금통도 당연히 단속대상"이라며 "선관위는 다양한 가치 중에서 합법성을 가장 중시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시민들은 "양말에도 태극기를 넣는 세상인데 국가 지도자를 뽑는 선거에서 태극기를 사용할 수 없는 건 납득하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국외대 이정희(李政熙·정치외교학) 교수는 "국민들의 자유로운 참정권을 보장하는 쪽으로 법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부작용 많은 여론조사 발표 금지
선거운동 기간 중 여론조사 결과 발표 금지 조항(공직선거법 108조)도 득보다 실이 많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 조항의 취지는 유리한 후보에게 표가 집중되는 '밴드왜건 효과'와 불리한 후보에게 동정표가 쏠리는 '언더도그 효과'를 막자는 것. 그러나 발표 금지가 유권자를 '선거축제의 장'에서 소외시키고 있다는 주장이 적지 않다. 오히려 출처불명의 조사 결과가 인터넷 사이트에 잇따라 올라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김석연(金石淵) 변호사는 "유권자들의 정치의사 형성의 자유를 억압하는 독소조항"이라며 개정을 촉구했다. 정치 선진국 중 여론조사 결과 발표를 막고 있는 나라는 거의 없고, 일부 국가는 보통 선거 하루나 이틀 전에만 금지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행 선거법은 '오프라인'
이번 대선의 가장 큰 특징은 사이버 공간에서의 유권자운동과 선거전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점. 그러나 현행 선거법은 온라인 선거에 대한 규정이 전무한 실정이다. 이 때문에 사이버상의 여론조사와 후보자토론 등이 사실상 금지되고 있어 '인터넷 시대'에 역행하고 있다는 주장이 잇따르고 있다.
대선유권자연대 관계자는 "네티즌들의 활동에 오프라인식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며 "현실은 뛰고 있는데 법은 기고 있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김정호기자 azure@hk.co.kr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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