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방한한 리처드 아미티지 미 국무부 부장관은 미국 정부를 대표해 의정부 여중생 사망 사건에 대한 사과를 거듭 표명했다. 당초 그의 방한은 이라크전 지원과 북한 핵문제에 대한 논의를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 급속히 확산되는 반미(反美)기류로 의제의 우선 순위가 바뀐 셈이다. 그만큼 한미 양국정부가 반미기류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아미티지 부장관이 "이번 방한의 가장 큰 목적은 여중생 사망 사건과 관련한 미 정부의 심심한 사과의 뜻을 표명하는 것"이라고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아미티지 부장관은 이날 서울 한남동 외교부 장관 공관에서 최성홍(崔成泓) 외교부 장관과 면담을 갖기에 앞서 기자들에게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2명의 어린 소녀 죽음에 대해 깊은 사과(deepest apologies)를 전달해 달라'고 당부했다"고 말했다. 이는 지난달 27일 토머스 허바드 주한미대사를 통해 발표한 부시 대통령의 사과메시지에도 불구하고 반미감정이 더 확산된 데 따른 추가조치로 풀이된다. 사실상 부시 대통령의 두 번째 사과인 것이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의 직접 사과를 요구해 온 대선후보들과 시민단체들이 미국측의 두 번째 간접 사과를 납득할 지는 미지수다. 부시 대통령의 첫번째 사과는 국내 여론에 떠밀려 마지못해 한 것처럼 비쳐지면서 오히려 반미감정에 불을 댕겼다. 비록 두 번에 걸친 사과이기는 하지만 모양새는 달라진 것이 없어 효과가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이와 관련, 정부 당국자는 "이번 사건에서 한국 국민이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다는 점을 의식, 한국민에 대한 존중의 표시로 자신이 방한했음을 강조한 것"이라면서 "부시 대통령 직접 사과 요구도 충분히 염두에 둔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 양국은 아미티지 부장관과의 고위급 회담을 통해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선에 적극 협력키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12일로 예정된 한미합동위 형사분과위에서의 개선안 마련이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미군 범죄에 대한 우리 수사 당국의 초동 수사 참여 강화와 신병인도 후 미군 피의자 출석 조사 등 우리측이 마련한 방안이 대부분 수용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번 한미 협의에서도 운용상의 개선이 아닌 'SOFA 개정' 문제에 대해서 아예 언급이 없었다. 이에 따라 한미 양국정부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SOFA 개정을 요구하는 국내 여론에 대한 설득에 힘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진동기자 jayd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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