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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포도주와 햄버거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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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포도주와 햄버거 사이

입력
2002.1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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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양요 때 프랑스가 약탈해 간 외규장각 도서의 반환문제는 이 정권의 최대 외교 현안 중 하나였다. 반환을 논의하기 위해 수 차례 양국간 위원회가 열렸지만 별다른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문화대국임을 자부하는 양국간 자존심이 걸려 있는 이 문제는 심각한 외교적 마찰을 불러일으킨 사안이었다. 그러나 우려했던 반불(反佛)감정은 일어나지 않았다. 프랑스산 포도주 불매운동도 없었다. 오히려 올들어 햇포도주인 보졸레 누보 열풍이 전국을 휩쓸었다.■ 의정부 여중생 사망사건은 국가적 자존심이 걸렸다는 점에서 외규장각 도서반환문제와 다를 바 없는 사안이다. 프랑스는 우리나라의 국보급 문화재를 약탈하고도 이에 대해 일언반구 사과의 말도 없었다. 반면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주한미대사를 통한 간접사과의 형식이긴 했지만 한국 국민에게 유감의 뜻을 표했다. 미 국방장관과 주한미군사령관, 관련 사병들도 사과했고 미군은 위자료도 지급했다. 그런데도 반미정서는 요원의 불길처럼 번지고 있고, 미국산 햄버거 불매운동마저 벌어지고 있다.

■ 한·불, 한·미간 외교현안에 대한 반응의 차이는 국민 감정의 앙금과 질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해방 이후 한미관계는 프랑스는 물론 다른 어떤 나라와의 관계보다 중시돼 왔다. 80년대 이후 처음으로 반미 바람이 불긴 했지만, 미국은 여전히 유학생들이 가장 동경하는 나라였다. 그런 미국에게서 민족적 자존심이 상처를 입는 일을 당했을 때 그 반응은 격렬할 수밖에 없다. 낯 선 사람에게 한 대 맞는 것보다 믿었던 사람에게 뒤통수를 맞는 게 더 분하고 억울한 것과 같은 심리라고나 할까.

■ 최근의 항의시위는 여중생 사망사건뿐 아니라 정부의 수수방관 속에 흐지부지 처리된 주한미군 범죄에 대한 항의의 뜻을 담고 있다. 이번 기회에 불평등한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은 물론 한미 동맹관계를 질적으로 재편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우리 국민들은 광화문 촛불시위로 미국에 대해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한국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제는 정부가 화답할 차례다. 반미정서가 반미주의로 굳어지기 전에 한미관계를 재정립할 청사진을 마련해야 할 때다. 한미 동맹 50주년을 맞는 내년에도 미국산 햄버거 추방운동이 벌어지는 볼썽사나운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창민 논설위원 cm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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