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프로야구 자유계약선수(Free Agent)의 원소속구단 우선협상 시한이 9일로 끝났지만 FA 4명 가운데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선수는 안경현(두산) 한 명 뿐이다. 한마디로 시장에 찬바람만 불고 있는 셈. 이에 대해 야구계 일각에서는 '몸값 거품론'을 원인으로 꼽으며 제도적 개선책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국내 FA 제도는 어떻게 도입됐고, 무엇이 문제일까.■선수 권익 차원에서 도입
국내 프로야구에 FA가 도입된 취지는 선수에게 자유로운 구단 선택권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이전까지 선수들은 한번 입단하면 트레이드되거나 은퇴하지 않는 한 팀을 떠날 수 없었다. 이에 선수들은 '노비신세'라며 거세게 반발했고, 일부 선수들이 외국으로 빠져나가자 2000년 결국 FA 제도가 도입됐다. FA 자격을 얻으려면 매년 정규 시즌 3분의2 이상을 출전하는 등 일정한 요건을 갖춰 9시즌을 채워야 한다.
선수권익보호 차원에서 FA 제도가 도입된 후 국내 프로야구에 선수재벌의 시대가 도래했다. 도입 원년인 2000년 이강철과 김동수가 삼성 유니폼을 입으며 8억원씩 챙긴 것을 시작으로 2001년 홍현우와 김기태가 전년도의 두 배가 넘는 18억원을 받았다. 급기야 지난해 양준혁은 삼성으로 옮겨가며 사상 최대인 27억 2,000만원(옵션 포함)에 계약하는 대박을 터뜨렸다.
■작은 연못에 큰 물고기
양준혁이 받았던 27억2,000만원은 연봉 3,000만원을 받는 월급장이가 90년이 넘도록 단 한푼도 쓰지 않아야 만질 수 있는 거액. 선수들은 "피나는 노력으로 FA 자격을 얻은 선수에게는 당연한 보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올 시즌 239만 명의 관중을 모았던 국내 프로야구 시장 규모를 생각하면 거품 가격이라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한마디로 연못은 작은데 물고기 몸집만 크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거액을 받은 FA 선수들이 몸값에 걸맞은 활약을 하지 못한 것도 '몸값 거품론'을 더욱 부추겼다. 2000년 이후 15명이 FA로서 다년 계약을 했지만 FA 이전보다 나은 성적을 올린 선수는 고작 송진우(한화) 정도. 프로야구 한 관계자는 "상품의 질은 나아지지 않으면서 해마다 가격만 올라가는 것이 FA 시장"이라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또 다른 문제는 FA제가 프로야구에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시리즈 우승에 한이 맺혔던 삼성은 FA제가 등장하자 전체 15명 가운데 3분의1인 5명을 대거 영입하면서 계약금과 연봉으로만 무려 70억원을 쏟아 붓는 물량공세를 펼쳤다. 때문에 야구계 안팎에서는 "몸값이 치솟은 것은 특정구단의 책임이 크다"면서 "이런 식이라면 돈 있는 구단만 우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제라도 거품을 없애자
올 시즌 FA 시장에 찬바람만 불고 있는 것은 그 동안 가장 큰 고객이었던 삼성이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후 구매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기 때문. 삼성측은 "새로운 선수를 영입하기 보다 현재 전력을 가다듬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더구나 올 시즌 FA 최대어인 박경완(현대)이 '7년간 42억원'이라는 거액을 몸값으로 부르자 대부분 구단에서 아예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수요와 공급이 타협을 하는 것이 시장의 원리. 결국 올 시즌 FA는 자연스럽게 몸값의 거품을 걷어내는 가격 조정기를 맞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프로 구단의 한 관계자는 "계약금을 제한하고 전 소속구단에 대한 보상금을 낮추는 등의 방법으로 몸값을 현실화해야 한다"면서 "대신 FA 자격 요건을 완화해 보다 많은 기회를 준다면 선수들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천호기자 toto@hk.co.kr
■ 메이저리그 FA제도는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 FA제도가 자리잡은 것은 1970년대. 69년 시즌 종료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외야수 커트 플러드는 팀이 자신을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트레이드시키려 하자 소송을 제기, 대법원까지 가는 2년여 법정투쟁 끝에 비록 패하기는 했으나 FA제도 도입의 토대를 마련했다.
75년 LA다저스의 앤디 메서스미스와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데이브 맥넬리는 법정소송을 제기하지 않고 메이저리그 조정관 피터 사이즈가 이끄는 중재위원회를 통해 구단 이적의 자유를 인정받아 메이저리그 최초의 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었다.
이듬해 76년에는 메이저리그의 커미셔너와 선수노조가 풀타임 메이저리그 경력 6년이상 선수들에 한해 FA를 선언할 수 있도록 자격규정을 신설했다.
현대적 개념의 FA선수 1호는 74년 당시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에이스였던 캣피쉬 헌터. 오클랜드가 헌터에게 연봉의 절반인 5만달러를 지급하지 못하자 헌터는 소송을 제기, FA 자격을 따냈다. 이후 뉴욕 양키스와 당시로서는 최고액인 5년간 370만달러에 계약했다. FA제도 도입으로 선수들은 원하는 팀을 골라 이적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고 스타 선수들을 영입하기 위한 구단들의 경쟁으로 몸값은 폭등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지난해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천문학적 액수인 2억5,200만달러(연봉 2,520만달러)에 텍사스 레인저스와 10년간 계약하는 등 FA선수의 몸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자 미국에서도 FA제도를 개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했었다.
/최형철기자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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