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에서도 다른 나라를 침략하거나 다른 민족을 박해한 경험을 교과서에서 소상히 다루는 데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서양사학회(회장 주명철)는 13일 성균관대 600주년기념관에서 '기억하고 싶은 과거, 잊고 싶은 과거'란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고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 5개국의 교과서가 '부끄러운' 과거사를 어떻게 기술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본다.김중락 경북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캠브리지대와 옥스퍼드대가 만든 11∼14세 대상 영국의 역사교과서를 분석한 결과 교과서에 아일랜드 민족주의 운동에 대한 비난이나 비판을 거의 다루지 않았다는 점에서 피해자를 고려하면서 가해자의 반성을 담았다고 평가했다. 두 교과서 모두 적지 않은 분량(80쪽)으로 아일랜드 문제를 언급하고 있으며 그림이나 사진자료는 반아일랜드적 성향의 자료(10∼12%)보다 친아일랜드적 성향의 것(44∼54%)이 훨씬 많다.
다만 아일랜드 문제를 신·구교간의 갈등이 빚은 문제로 제시하는 등 영국의 책임을 회피하며 제3자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영국 역사교과서의 '자기보호적 태도'는 여전히 근본적 한계로 남는다고 김 교수는 지적한다.
프랑스 고교용 역사교과서 7종을 분석한 이용재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는 프랑스가 교과서에서 알제리의 독립전쟁(1954∼62)을 외면해오다 1980년대 들어 이 부분을 편입시켰으나 군대에 의해 자행된 고문 부분에 대해서는 여전히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뒤늦게나마 알제리 부분이 역사교과서에 편입된 것은 "프랑스 사회의 인종주의적 사고방식을 바로잡고 프랑스인의 정체성을 재확립하기 위해서는 식민지배의 역사를 돌이켜보고 반성해야 한다는 인식으로 가능했다"고 평가한다.
미국의 역사교과서를 검토한 손세호 평택대 미국학과 교수는 "베트남 전쟁을 다룬 부분이 매우 적고 전쟁 발발원인에 대해서는 언급을 않고 있어 미국의 반성 부분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과거 청산의 모범적 사례로 손꼽히는 것은 독일의 역사교과서. 김유경 경북대 사학과 교수는 독일은 홀로코스트를 비롯한 나치 정권의 범죄행위를 교과서에 아주 상세히 다뤘다고 소개하고 "80년대 들어 독일 사회에 신나치가 기승을 부리자 독일의 지식인들이 젊은 세대의 극우화를 우려하며 교과서 개정을 적극 요구한 결과 이같이 모범적인 교과서가 만들어졌다"고 분석했다.
주명철 서양사학회장은 "외국의 사례를 연구하면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응하는 방안을 찾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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