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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TV서 자라는 정치적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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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TV서 자라는 정치적 희망

입력
2002.1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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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클린은 TV에 의해 미국인의 총아가 되었다. 케네디와 재클린, 예쁜 두 자녀가 백악관에서 살 무렵은 TV가 폭발적으로 보급되던 시기였다. 대중은 TV를 통해 대통령 가족의 단란한 삶을 보며 자신의 일인 양 기뻐했다. 어느날 돌연 케네디 암살이라는 비극이 닥치자, 재클린은 국민의 슬픔을 응집시키는 구심점이 되었다. 구심점은 그녀의 재혼, 사망 때까지 이어졌다.잘 알려진 얘기지만, 케네디가 백악관 주인이 된 것부터 TV 덕이 컸다. 1960년 9월 CBS 토론은 말의 내용보다 이미지가 대통령 당선에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정치경력이 짧은 케네디 상원의원은 부통령을 두 번이나 지낸 닉슨과의 토론에서 승리했다. 젊고 건강한 케네디는 분장까지 했고, 나이가 들고 무릎 부상을 입었던 닉슨은 분장을 거절했다.

케네디는 꼿꼿한 자세로 시청자를 향해 활기차게 이야기했고, 움푹 꺼진 눈과 짙은 턱수염을 한 닉슨은 말하면서 자꾸 시계쪽을 힐끔 거렸다. 양쪽 참모의 다툼이 치열했다. 당황한 닉슨 참모들은 가능한 한 카메라가 닉슨을 안 비추도록 한 반면, 케네디 쪽은 닉슨에게 카메라를 더 많이 비추라고 요구했다. 라디오로 토론을 들은 사람은 닉슨이 이겼다고 평가했고, TV를 본 사람은 케네디가 우세했다고 확신했다.

그 토론의 주제는 '국내문제'였으나, 많은 책들은 후보들의 건강상태와 분장, 의상, 토론자세 등 외형적 이미지만 중요한 듯 언급하고 있다. 최초로 TV토론이 정치와 선거의 흐름을 좌우하는 주요 수단으로 등장한 것이다. TV토론이 후보를 선택하는 데 기여하리라는 믿음은 지금도 굳건해 보인다.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상대를 외모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직관에 대한 믿음에도 불구하고, TV토론은 외모지상주의(루키즘)나 관상학에 더 의존할 위험성이 있다. 지금까지 미국인은 케네디와 카터, 레이건, 클린턴 같은 미남형 대통령을 선택했다. 토론이 깊이 있게 진행되지 못하고 피상적으로 흐를 때 그럴 위험은 더 커진다.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도 TV토론이 선거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있다. 우리 TV토론은 질문 1분, 답변 1분30초 등 단답형 식으로 진행된다. 이런 판에 박은 진행으로는 후보 별 정책 차이와 인간적 내면을 가늠하기 힘들다.

이강(二强)구도가 굳건해 보이기는 하나, 민노당 권영길 후보의 토론참여는 큰 변화를 가져왔다. 그의 등장으로 세 후보에 대해 보수(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중도(민주당 노무현 후보), 진보(권영길)라는 구분이 가능해지고 있다. 원래 토론장은 다양한 정책적·이념적 주장들이 만나 한 바탕 싸움을 벌이는 들판이 되어야 한다. 사상의 자유시장이 되어야 한다.

새 세기의 첫 대선에 각별한 기대를 걸고 있다. 우선 지긋지긋한 망국적 지역주의가 추방되어, 정책과 이념으로 당당히 대결하는 것을 보고 싶다. 대선을 통해 정치도덕성이 회복되고, 양심의 자유도 신장되고, 통일에 대해 더 큰 희망을 품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 기대를 채워줄 후보를 찾고자 한다.

그러나 후보들은 자신이 보수와 진보로 구분되는 이분법을 한사코 피하려 하고 있다. 아직도 이념문제는 '색깔론'이라는 무기로 공격하면 치명상을 입게 되는 음험한 함정이기 때문이다. 이념문제가 더 이상 순수한 정치인을 매장 시키는 아킬레스건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국민도 그런 불순한 시도에 끌려 다녀서는 안 된다.

다양한 이념이 자유롭게 표현·주장되지 못할 때, TV토론 역시 한낱 루키즘이나 관상학에 머물고 만다. 유권자가 네거티브 캠페인의 장막 너머로 순수한 맨 얼굴의 후보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변화를 꿈꿀 수 있는 날이 오고 있다.

박 래 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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