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들이 '모나미'라는 브랜드명의 유래를 궁금해 한다.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있지 않을까 해서이다. 하지만 죄송하게도 '모나미'의 탄생 과정은 싱겁기 그지없다.광신산업이 첫 생산에 성공한 그림물감과 크레파스를 놓고 나는 전 직원과 함께 '작명회의'를 가졌다. 전 직원이라고 해봐야 스무명 남짓. 저마다 좋은 이름을 붙여 주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을 때 어떤 직원이 불쑥 '모나미'(Monami)가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 직원은 불문학에 심취해 불어 사전을 옆에 끼고 살던 친구였다. 그는 "불어로 모나미는 '나의 벗' '나의 친구'라는 의미인데, 어린이들이 항상 가까이 두고 사용하는 그림물감의 이름으로 알맞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모나미는 발음도 쉬웠고, 불어 상표명이라 그런지 세련된 맛도 있는 것 같아 나는 그 제안을 즉각 채택했다. 그것이 모나미의 출발이었다.
지금이야 기업들이 브랜드 가치에 대한 중요성 때문에 상품명을 정하는데 시간과 비용을 아낌없이 투자하지만 당시는 브랜드 가치에 대한 개념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메이커 입장에서 부르기 쉽고, 뜻 좋으면 그만이었다.
남은 건 크레파스였다. 크레파스 소비층은 초등학교 저학년인 1∼4학년이었다. 난상토론 끝에 우린 크레파스 상표를 '왕자'로 결정했다. 초등학교 저학년의 정서에 '동화속 왕자'가 적합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영업·판매망은 브로커 곽씨가 수입 문구류를 판매하면서 관계를 맺어놓은 도매상들을 활용했다. 이들에게 12색 모나미 그림물감과 16색 왕자파스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초등학생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나중에 언급할 기회가 있겠지만 이때부터 그림물감과 크레파스를 공급받아 판매한 도매상들은 훗날 모나미 고유의 판매 네크워크인 '모나미회'의 모체가 돼 모나미 성장의 중추적 역할을 하게 된다.
광신화학은 모나미 그림물감과 왕자파스를 시중에 판매하면서 제품 질 향상에 게을리 하지 않았다. 후발주자로서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으려면 질(質)로 승부하는 길 밖에 없었다. 우린 광신산업과 한국 내 문구류 총판 대리점 계약을 맺고 있던 일본의 우치다요코(內田洋行)측에 부탁해 그림물감과 크레파스 제작 기술에 관한 일본 자료를 공수받아 모나미 그림물감과 왕자파스 생산에 적용하기도 했다.
1961년 3월, 모나미 그림물감과 왕자파스가 출하된 후 첫 신학기가 시작됐다. 요즘에는 학생용 문구류 판매량의 계절적 편차가 크지 않지만 당시에는 신학기가 시작되는 3, 4월이나 8, 9월이 최고 판매고를 올릴 수 있는 시기였다. 학생들이 새 학기가 시작할 때 부모를 졸라 새 그림물감, 새 크레파스를 사서 한 학기 내내 소중한 보물 다루듯 아껴 쓰는 게 당시에는 일반적이었다.
나는 봄 신학기에 대비, 가을부터 생산량을 조금씩 늘려 재고를 충분히 쌓아놓은 다음 소비자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시작했다. 시장을 파고들기 위해서는 획기적인 영업·판매 전략이 필요했다. 그때 나온 아이디어가 '시간표' 마케팅이었다. 도화지에 모나미 그림물감, 왕자파스 그림과 로고가 함께 인쇄된 시간표를 학생들에게 나눠주는 작업이 시작됐다. 나를 비롯한 회사 임원은 물론 영업·경리·생산직 직원을 가릴 것 없이 모두 시간표를 손에 들고 각 지역 초등학교 앞으로 달려가 등·하교하는 학생들에게 나눠줬다. 시간표 마케팅은 성공이었다. 빳빳한 도화지에 예쁜 왕자 그림과 함께 인쇄된 시간표는 어린 학생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었고 모나미 그림물감, 왕자파스 판매량도 급속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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