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열풍이 한창이던 3년 전 서울 모 대학의 한 공과대 교수는 돈 문제로 수년간 동고동락했던 제자와 결별할 뻔한 아찔한 경험을 했다. 학과 연구소에서 개발한 신기술이 교수 개인 명의의 미국 특허권 획득으로 이어졌고, 곧 이 기술은 미국 기업에 수백만 달러에 팔렸다. 하지만 언론 보도를 통해 대박 소식을 접한 조교 중 1명이 이 교수를 찾아와 대뜸 "공동 개발한 기술이기 때문에 수익을 공평하게 나누지 않을 경우 법적 대응에 들어갈 수 밖에 없다"라고 따졌기 때문. 다른 교수들의 중재로 사태는 원만히 해결됐지만 이 사례는 대학 내 특허관련 법규가 얼마나 허술한 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학교재정확보의 유일한 방안
서울대 박종근(朴鍾根) 연구처장은 지난 달 "교수들의 특허를 학교가 본격적으로 관리하는 재단법인인 서울대 산업협력단을 내년 1월께 출범시킬 예정"이라며 "향후 5년 동안 총 25억원을 투자하면 시행 5년 후부터 손익분기점을 넘어 수익재단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산업협력단을 통해 생기는 수익금의 절반 이상은 해당 교수에게 배분하고, 나머지는 학교측 기금으로 활용된다.
한양대, 포항공대, 연세대, 고려대 등 19개 사립대학이 2000년부터 특허 전담을 위한 기구를 설립, 운영해 온 것에 비하면 서울대는 한발 늦은 셈이다. 지난 해 12월에야 국·공립대의 특허 판매로 인한 수익금을 국가에서 학교로 바꾸는 기술이전촉진법이 개정됐기 때문이다. 개정 전까지 비교적 우수한 연구여건을 갖춘 서울대는 최근 10년 동안 교수들이 특허를 수백 건 이상 획득했지만, 국가 명의로 된 것은 10건에 지나지 않았다. 또 교수 개인 자격의 특허도 대부분 헐값에 기업에 넘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서울대 지적소유권 전담법인 설립추진 실무단장 홍국선(洪國善·재료공학부) 교수는 "관련 법규가 없고, 교수들에게 동기 유발도 안돼 매년 300∼500건 정도의 특허가 사실상 사장(死藏)되었다"며 "산학협력단은 대학이 개발한 각종 신기술을 국내 기업에 알리고, 제값에 판매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국내 대학들은 산학협력단이 궁극적으로 대학 재정확보에 기여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한양대 기술이전 센터 손영욱(孫永旭) 팀장은 "특허권판매로 미국 매서추세츠공대(MIT)는 1996년도에만 1,010만달러, 스탠포드대는 4,2380만달러의 수익을 올렸으며, 이 덕분에 대학 전체 재정의 50%를 충당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초기 연구비를 대폭적으로 지원한다면 우리도 곧 그런 환경으로까지 발전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업을 닮아가는 대학, 반발도 만만찮아
산학협력단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와 달리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만만찮다. 국내 대학들의 특허전담기구가 군산복합체의 하청연구기관, 공익성보다는 다국적 기업의 일방적 이익만을 추구하고 있는 미국식을 일방적으로 따르고 있다는 비난이 그것이다.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 배태섭(裵台燮) 간사는 "산학협력단은 직무관련 발명을 개인의 발명으로 여겨오던 음성적인 관행을 줄일 수 있다"면서도 "돈을 벌 수 있는 학문은 번창하고, 기초과학분야는 위축될 수 있다"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한국교수노동조합 박거용(朴巨用·상명여대 영어교육과) 부위원장은 "한마디로 학교를 기업화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면서 "학생들의 등록금을 연구개발비로 사용한 후 특허를 개발한 교수들에게 수익금을 되돌려 주는 게 바람직한 지에 대한 공감대가 아직 형성되어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정원수기자 noblelia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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