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7월 중순에 이미 중국의 참전을 예견하고 대비했으며 북한 또한 미국의 인천상륙작전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으므로 한국전쟁을 보는 '제한전쟁론'이나 '오인론'은 수정되어야 한다는 연구서가 나왔다.소장 정치학자 박명림(朴明林·39)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최근 '한국 1950―전쟁과 평화'(나남출판 발행)를 펴내고 1950년 6월25일 북한의 남침에서 1·4 후퇴까지 6개월간의 전쟁 양상을 추적, 한국전쟁에 관한 기존 통설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이 책은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등에서 찾아낸 방대한 사료 분석과 현장답사, 관련자 증언 등을 토대로 학계에서 등한시해온 실제 전쟁의 전개 양상을 꼼꼼하게 재구성했다.
'제한전쟁(Limited War)론'은 지역과 물자동원, 전쟁 목표 등 미국의 정책이 제한적이었고, 이것이 제3차 세계대전으로의 비화를 막은 요인이었다는 주장으로 미국의 주류 정치학자들이 자국 외교정책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내세우는 학설이다. 그는 그러나 50년 7월25일 미 육군참모부의 극비문서에 이미 '한반도 전체 수복'을 목표로 인천상륙작전 계획까지 등장하고 있으며, 맥아더 장군이 38선 북진시 '한반도의 완전 점령'을 뜻하는 '무조건 항복'을 북한에 지속적으로 요구한 점 등을 들어 이 주장을 '오류'로 판정한다. 박 교수는 또 미 합동참모본부 문서 등을 분석, 미국이 중국의 참전을 7월 중순부터 대비했음을 밝혀냈다. 그는 이를 근거로 "미국이 한반도의 수복에서 더 나아가 중국 공산정권의 붕괴까지 목표로 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추정한다.
그는 또 한국전쟁의 주요 국면을 관련국들의 오판의 산물로 해석하는 윌리엄 스튜어크 등의 이른바 '오인(Misperception)론'도 인천상륙작전의 예를 들어 반박한다. 그는 "8, 9월 북한군은 인천상륙작전에 대비한 비밀명령서를 내렸다"면서 "작전이 성공한 것은 북한의 오판이 아니라 미군의 압도적 힘의 우위 때문이었다"고 주장한다.
김일성이 8월 초 전 부대에 내린 '특별처분 명령서'도 첫 공개됐다. 그는 "북한이 승승장구하던 전쟁 초반에 '도주자 즉결총살'을 포함한 무시무시한 명령을 내렸다는 것은 인민군이 '철의 군대'였다는 통설과 달리 명령 체계에 문제가 많았음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박 교수는 전쟁 책임론에 매달리는 전통주의, 전쟁을 부른 구조적 요인에 천착한 수정주의 모두를 공박한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전2권)을 96년 펴내 국내외 학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이번 책에서도 박 교수는 브루스 커밍스 등 수정주의자들이 논거로 삼는 토지개혁 실상을 언급하며 "북한이 충남 보은군 점령 후 분배한 농지는 가구당 0.36정보로, 전쟁 전 남한이 분배한 0.38정보보다 적다"면서 "계급혁명 차원의 전쟁 성격 규정은 오류"라고 공박한다.
박 교수는 북한이 미군 양민학살의 대표적 사례로 꼽는 황해 신천학살은 미군의 소행이 아니라 좌우익 갈등의 결과라고 밝힌다. 그렇다고 미국에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니다. "참혹한 양민 학살이 남과 북, 미국 모두에 의해 저질러졌는데도 어느 일방의 학살만 비판하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박 교수는 한국전쟁에 대한 기존 연구 대부분을 비판하는 데 대해 "그만큼 기존 연구가 필요에 따라 사실을 취사선택하는 이념적 편향성을 보여왔다는 반증"이라고 말한다. 그는 "전쟁을 보는 시각 자체를 명확한 사실에 근거하는 보편주의로 전환해야 화해와 관용을 통해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과 평화, 인권의 시대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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