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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쓴소리]철새 진드기 바퀴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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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쓴소리]철새 진드기 바퀴벌레

입력
2002.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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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개월 동안 이른바 '철새 정치인들'에 대한 비판이 무성하게 쏟아져 나왔다. 어느 생물학자는 '철새 정치인들'이라는 표현은 철새에 대한 모독이라며 '진드기 정치인들'이라는 표현을 쓰자고 제안하면서 그들의 '박멸'을 주장했다. 또 어느 정치학자는 그들의 정치 행태가 한국 민주주의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한 혐오감을 제대로 표현하려면 '바퀴벌레 정치인들'이라고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철새, 진드기, 바퀴벌레에 이어 또 어떤 동물이 등장할 지 모르겠다. 바퀴는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벌레인지라 '박멸'이 용이치 않으므로 부적절하다는 반론이 제기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나는 그런 비판의 선의와 문제 의식에 십분 공감하면서도 과연 그 문제의 정치인들만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건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철새'들은 대부분 민주당에서 한나라당으로 날아갔다. 한나라당은 '철새'들이 날아올 때마다 환영식을 해주면서 크게 반겼다. 이거 좀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모든 언론과 지식인들로부터 호된 비판을 받은 '철새'들이 많이 날아 올수록 득이 될 것이라고 보는 한나라당의 판단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한나라당은 '바보 정당'인가? 아무리 봐도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상당수 '철새'들이 당적 변경 이전에 자기 지역구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해서 여러 차례 여론조사를 해보고 그 결과에 따라 움직였다는 것도 영 심상치 않은 일이다. 그러니까 언론과 지식인들로부터는 욕을 좀 먹더라도 다음 총선에서의 당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철새'가 되기로 작정했다는 게 아닌가 말이다. 따라서 '박멸' 가능성도 이미 물 건너 간 게 아니고 무엇이랴.

우리는 국민이 정치 개혁을 원할 것이라는 환상에 빠져 있다. 이 환상을 깨지 못하는 한 정치 개혁은 영원히 기대하기 어렵다. 국민은 정치 개혁을 원한다고 말은 한다. 그러나 말 뿐이다. 투표장에 들어선 그들의 손가락은 말과는 따로 논다. 유권자들이 생각하는 국회의원은 자기 지역의 이익을 챙겨주는 로비스트에 지나지 않는다. 로비스트 노릇을 잘 하기 위해서는 정치 개혁에 역행하는 것이 유리하다.

희대의 국민 사기극이라고 흥분할 건 없다. 희망이 전혀 없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기적으로 살다가도 우리 전체의 사는 모습이 해도 너무 한다고 생각하면 어느 순간 양심과 도덕으로 복귀하는 묘한 특성을 갖고 있는 동물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과거의 위대한 민주 항쟁들을 결코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 정치, 이미 해도 너무 하는 수준에까지 도달했다. '소탐대실(小貪大失)의 법칙'이 작동할 때가 되었다. 눈 앞의 작은 이익에 매몰돼 자식들에게까지 기존의 더러운 정치판 문화를 고스란히 물려줄 것인가? 정당과 정치인들도 자문자답해 봐야 할 것이다.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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