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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지도자의 네 가지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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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지도자의 네 가지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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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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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는 국민과의 관계에 있어서 선과 악의 관점에서 볼 때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선을 악으로 다스리는 이악제선(以惡制善)형이다. 이 유형의 가장 흥미로운 사례는 삼국지의 조조이다. 조조는 동탁을 죽이려다 미수에 그치고 도망을 가다 백부로 모시는 여백사의 집에 들린다. 자기를 위해 돼지 잡는 것을 자기를 죽이는 줄 잘못 알고 여백사의 처자와 비복을 죽이고 도망가는 길에 술과 안주를 사 가지고 오는 여백사를 만나 그가 밀고할까 봐서 그마저 죽이는 얘기다. 그리고 나서 그는 후세의 많은 폭군들의 좌우명이 된 다음의 명언을 남겼다. '차라리 내가 세상을 저버릴지언정, 세상이 나를 저버리게 하지는 않겠다.'둘째는 악으로 악을 다스리는 이악제악(以惡制惡)형이다. 이 유형에 해당되는 지도자는 YS 대통령이 아닐까 생각된다. 모 유력지의 편집국장을 지내고 YS 밑에서 청와대 수석을 두 번, 장관을 두 번 역임한 분이 5년전 대선을 앞두고 쓴 책에서 읽은 얘기다. YS는 초기에 군부의 하나회를 없애고 금융실명제를 도입하고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를 통합해 재정경제원을 만드는 등 과거 대통령이 하지 못한 과감한 개혁을 추진했다.

그러나 집권당은 1995년 6월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 YS와 집권당은 어찌보면 목숨을 걸고(?) 개혁을 했는데 국민은 이를 저버렸다. 이런 국민을 위해 개혁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우세해지고 나라운영과 개혁은 샛길로 빠지기 시작했다. 그 샛길은 96년 총선에서 '승리를 위해 어떤 양보도 하지 않겠다'는 YS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많은 무리수를 두게 되고 급기야는 97년 경제위기로 이어졌다.

셋째는 선으로 악을 다스리는 이선제악(以善制惡)형이다. 영국 총리 처칠이 대표적 사례이다. 신명을 바쳐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그에게 종전 후 2개월만에 돌아 온 것은 그를 수상직에서 쫓아내는 총선에서의 참패였다. 그의 동료들이 이런 배은망덕이 있느냐고 국민을 비난했으나 그는 퇴임사에서 말했다. "그 어려웠던 시기에 제가 봉사했던 국민께 제가 드릴 수 있는 것은 저의 재임 중 저에 대한 확고한 지지와 국민의 종인 저희들에 대한 따뜻한 친절에 충심으로 감사하는 것뿐입니다." 공직자를 영어로 시민의 종(civil servant)이라고 한다. 처칠은 총리인 자신을 진정 시민의 종으로 알았던 것 같다. 그의 퇴임사가 우리에게 던져 주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우리 공직자는 시민의 종이고 국민은 우리의 상전이다. 상전이 종에게 이제 너는 할 일을 다했으니 그만 떠나라고 할 때 그것을 배은망덕이라 할 수 있겠는가."

마지막 넷째는 선과 선을 주고받는 이선제선(以善制善)형이다. 양민을 가진 대부분의 성군들이 이 유형에 해당되나 가장 감동적인 사례는 중국 춘추시대 초나라의 장왕(莊王)이다. 이것은 '갓끈을 자른 연회'라는 뜻의 절영지회(折纓之會)로 유명한 고사이다. 어느 날 밤, 장왕은 여러 신하들과 연회를 벌였다. 밤이 깊어지고 술에 취해 흥이 오르자 장왕은 "오늘밤은 누구도 신경쓰지 말고 맘껏 놀아보자"며 불까지 껐다. 어둠을 틈타 왕의 애첩에게 장난한 자가 있었다. 애첩은 그의 갓끈을 끊은 다음 왕에게 호소했다. "빨리 불을 켜서 갓끈이 없는 자를 잡아주세요." 장왕은 애첩의 호소를 묵살하고 모두에게 갓끈을 떼라고 명했다.

수년 후 진(晋)나라의 대군을 맞아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선두에서 몸바쳐 적군을 격퇴시킨 장수가 있었다. 승리 후 장왕이 그에게 사연을 물었다. 그는 엎드려 울면서 고했다. "수년 전 그 밤 대왕께서 제 목숨을 살려 주셨습니다. 오늘 그 은혜의 만분지일이나마 갚고자 했을 따름입니다."

최고의 지도자를 선택할 대선이 이제 9일 남았다. 지금 우리에게는 어떤 유형이 최선의 지도자일까.

이 계 식 KDI 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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