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현지 시간) 미국에서 별세한 윌리엄 글라이스틴 전 주한 미국대사는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 전후 격동했던 한미 외교와 한국현대사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11대 주한 미국대사로 78년 7월부터 3년 간 서울에서 근무한 그는 지미 카터 행정부의 주한미군 철수 움직임,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암살 사건, 5·18 광주민주화 운동을 미국의 입장에서 지켜보았다.
그는 대사 재직 시 미국이 한국 신군부의 등장을 결과적으로 용인했기 때문에 한국 야당으로부터 1988년 광주특위의 증인 출석을 요청받기도 했으나 거부했다.
글라이스틴은 대사 재직 경험을 기록한 회고록 '깊숙한 개입, 제한된 영향력'에서 미국 정부가 주한미군 철수, 대북정책 변경, 헌법체제 옹호 등의 카드로 신군부를 견제하려 했으나, 안보상의 우려로 실행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는 "광주 민주화운동의 강경진압이라는 신군부의 잔인한 행동에 미국은 공모자가 아니었으나 무력했던 것만은 사실"이라고 회고했다.
87년에는 미 행정부 고위관리들과 함께 내한해 한국 민주화 추진 상황을 파악했으며, 올 2월에는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 대사 등과 함께 방북을 추진하려다 한미 정상회담을 이유로 일정을 취소했다.
1926년 베이징(北京)에서 태어나 중국과 일본에서 자란 그는 예일대학에서 동양학을 전공했으며, 51년부터 미 국무부에 들어가 외교관의 길을 걸었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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