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 맘 때면 여기저기에서 술과 싸워 이기는 '병법'들이 쏟아져 나온다.술과 싸워 이기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그 하나는 '안주를 먼저 먹고 술은 천천히 마셔라', '숙취제거에는 콩나물이 최고다' 등과 같이 기왕에 술을 마셨거나 마시기로 작정한 사람들을 위한 '달래기 전법'이다.
또 하나는 '필름이 끊기면 치매의 시초다', '과음하면 다음날 돌연사할 확률이 높아진다' 등과 같은 협박으로 애초에 술을 입에 대지 못하게 하는 '어르기 전법'이다. 그러나 이런 달래고 어르는 초보수준의 병법은 1차, 2차, 3차로 이어지는 우리네 오랜 음주 습관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되기 십상이다.
우리에게 이런 과격한 음주문화가 생겨난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죽기 살기로 생업에 매달려야 하는 가혹한 현실 속에서 속전속결로 스트레스를 푸는 데에는 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건 우리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그랬다. 이렇게 오랜 세월 쌓여온 음주문화를 단번에 없앤다는 건 대책 없는 매춘굴 소탕작전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다.
그보다는 술 외에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방법을 찾도록 해야 한다. 이번 기회에 '자녀와 함께 술 마시기 운동'을 펼쳐보는 건 어떨까 싶다. 스트레스 해소의 명약인 술을 혼자만 즐길 게 아니라 사랑하는 자녀들에게도 나눠주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진짜로 자녀와 함께 술상을 펼치고 술을 마시자는 게 아니다. 내가 마실 술값의 일부를 내 아이가 술이 아닌 건설적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도록 투자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비로소 우리가 아버지들에게 물려받은 '술의 업보'를 대물림하지 않을 수 있다.
스트레스 해소를 핑계로 술잔을 들게 될 우리 아이의 손에 미리 바이올린이나 붓을 들려주는 것이다. 올 송년회에서 마실 술값의 절반을 뚝 잘라 내 아이에게 새로운 미래를 선물해 볼까 싶다.
/정찬호 정신과전문의·마음누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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