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시작한 아프리카 자원봉사가 삶의 나침반이 됐습니다."9개월여 해외 자원봉사를 마치고 3일 입국한 강혜윤(23·여·이화여대 정치외교 졸)씨가 맑은 웃음과 함께 "힘들었지만 보람찼던" 아프리카 생활을 털어 놓았다.
강씨가 아프리카행을 결심한 것은 올해 2월. 우연히 한 시민단체가 주관하는 해외 자원봉사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덜컥 원서를 냈다. "늦기 전에 넓은 세상을 보고 싶었습니다. 또 어려운 사람들에게 작은 보탬도 되고 싶었습니다." 그는 3월 자원봉사자로 뽑히자마자 아르바이트로 모아둔 돈을 털어 아프리카 가나로 날아갔다. 그가 도착한 곳은 수도 아크라에서 차로 16시간이나 비포장 길을 달려야 하는 북쪽의 오지 마을 '살라가'. 그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물도 길어다 먹어야 하는 곳이라 19세기에 들어선듯한 착각에 빠졌을 정도"라고 회상했다.
그는 동료 3명과 근방에서 유일한 학교인 살라가 고등학교에서 보조교사 일을 시작했다. 강씨가 맡은 과목은 화학. 매일 밤 책을 뒤적여 고등학교때 기억을 되살렸고, 교재까지 만들어 70여명 아이들을 가르쳤다.
"낯선 외국인만 보면 무언가 달라고 조르기만 하던 아이들이 조금씩 변해가는 것을 보면서 보람도 느꼈습니다."
살라가를 찾은 최초의 한국인들인 강씨 일행에게 가장 큰 어려움은 물과 전기. 끓여먹는다지만 누런 빛깔 물을 마시고 나면 배탈이 나기 일쑤였고, 캄캄한 밤엔 주먹만한 벌레와 쥐 때문에 놀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강씨는 죽을 고비도 넘겼다. 으슬으슬 몸에 열이 나 감기인줄 알았더니 말라리아였다. "하늘이 노랗게 보이고 '이제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간신히 마을 사람들 도움으로 병원에 실려갔어요."
그는 이별의 서운함 대신 '카메라 보내달라' '초청장 부쳐달라'는 아이들의 작별 편지가 더 가슴 아팠다. "오죽하면 그랬을까요. 하지만 마지막 날 눈물을 흘리던 아이들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어요."
강씨는 앞으로 대학원에 진학, NGO나 국제기구 관련 공부를 할 생각이다. "지금까지 별 어려움 없이 정해진 길만 걸어왔는데 주위엔 어려운 사람들이 많아요.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할 겁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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