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생에서 스님, 신부님들까지….' 여중생사망사건 미군병사에 대한 무죄평결로 촉발된 국민적인 반미기류는 과거와는 그 성격과 범위가 판이하다.과거 우리사회의 반미운동은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반대와 연계돼 일부 운동권 학생과 재야단체의 전유물로 여겨지거나, 혹은 '친북' 행위로 위험시돼 왔던 것이 사실. 그러나 요즘의 반미시위는 특정한 정치적 견해를 갖지않은 일반대중 전체의 소박한 정서를 자극하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서강대 손호철(孫浩哲·정치외교학) 교수는 "과거처럼 이론적으로 무장된 '반미'가 아니라 일반국민들의 건전한 상식에 기초한 '반미'라는 점에서 현재의 반미감정은 더 큰 폭발력을 갖는다"고 말했다.
■대학가·중고교·네티즌
지난 달 30일부터 매일 오후 6시 서울 광화문에서 열리는 촛불시위에는 네티즌은 물론 퇴근길 '넥타이 부대'들도 참여하고 있다. '여중생 사망 범국민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의 성금 모금도 미군 무죄평결 이후 가속이 붙기 시작, 지난 달 말 1억원을 돌파했다. 범대위 채희병(蔡熙秉) 사무국장은 "촛불시위를 전후해 2시간 정도 모금을 하면 60만∼70만원 이상이 들어온다"고 밝혔다.
1일 백악관, 미 대사관 등을 상대로 1,2차 '사이버 시위'를 벌였던 여중생 범대위는 6일 오후 2차례에 걸쳐 3, 4차 '공격'을 시도했다. 사이버 범대위 채근식(蔡根植) 대표는 "2월 동계올림픽 '오노 사건' 당시 네티즌들의 반미 정서가 단순한 울분에 기초했다면 이번에는 현실의 모순을 이해한 '의식화' 한 네티즌들이 참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범대위는 14일에는 '오만한 미국 규탄과 국가주권회복을 위한 범국민 평화 대행진'을 개최, 반미 열풍을 확산시킬 계획이다.
특히 전교조가 다음 주부터 불평등한 한미관계에 대한 특별수업을 진행할 계획이어서 반미 열기가 중·고교로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각 대학 총학생회가 서명운동과 반미 문화제 등을 잇따라 개최하는 등 대학가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한국외대 총학생회 간부인 조화명(趙華明·행정학과 4)씨는 "3일만에 학생 1,000명이 서명에 동참했다"며 "그 동안 학생들을 결집할 만한 사회문제가 많지 않았는데 여중생 사망사건이 새로운 계기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고려대 교수들이 조만간 '우리의 입장'을 통해 SOFA 개정 등을 촉구키로 하는 등 각 대학별로 교수 성명도 줄을 이을 전망이다.
■문화·예술·체육계
이춘연 영화인회의 이사장, 영화배우 문소리 추상미 권해요 정진영과 가수 윤도현, 이현우, 개그맨 김미화 전유성 등 방송·문화예술인 200여명은 6일 서울 광화문에서 '여중생 압사사건 무죄평결에 대한 방송문화예술인의 선언'을 발표하고 책임차 처벌과 부시정권의 공식적인 사과, SOFA개정을 요구했다.
TV 시사프로그램과 라디오도 연일 맹공을 가하고 있다. KBS2 '추적60분' MBC 'PD수첩' 등 시사프로그램은 물론 일부 라디오 프로그램까지 여중생 압사사건과 관련한 미군 병사들에 대한 무죄평결의 부당성과 파장, SOFA 개정의 당위성 등을 지속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무죄평결 후 시사프로그램 중 처음으로 11월26일 '그들만의 재판, 미군은 무죄인가'편을 방송한 MBC 'PD수첩'(화 밤11시5분)은 17일 이번 사건에 대한 종합편 성격의 특집 프로그램을 한번 더 방송할 계획이다.
KBS2 '추적 60분'(토 오후9시50분)도 21일 주한미군과 SOFA의 문제점을 짚고 개선방향을 모색하는 프로그램을 방송할 예정이고, SBS 라디오 '손숙 배기완의 아름다운 세상'(오전9시5분)은 7일 무죄평결에 항의하고 SOFA 개정을 촉구하는 뜻에서 전면 음악방송을 한다.
한국프로야구 선수협의회도 4일 성명을 발표, "숨진 여중생 유가족에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한다"면서 불합리한 SOFA의 개선 등을 주장했다. 이승엽(李承燁·삼성) 선수는 "무죄 판결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이종범(李鍾範·기아) 선수 역시 "주니치에서 선수생활을 할 때 발생한 일본 오키나와의 미군 병사 소녀강간사건에서 해당 미군이 일본 법으로 처벌받았다"며 정부의 소극적 대응을 비판했다.
■미국제품 불매운동
올해 2월 '오노 사건'으로 홍역을 겪었던 미국계 다국적 기업들은 국민들의 반미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당시 직접 피해를 입었던 한국 맥도날드 측은 최근의 분위기에 크게 당혹해하며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서울 용산구 선인상가의 10여개 매장은 '미군들에게는 물건을 판매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쓰인 공고문을 문 앞에 걸고 영업하고 있다. K컴퓨터 대표는 "조립컴퓨터를 구입하려는 미군들이 하루 10명 내외씩 찾고있지만 이들에게 물건을 팔아 돈 벌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김정호기자 azure@hk.co.kr
김태훈기자 onewa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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