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여중생 사망 사건과 관련된 미군 병사 2명에 대한 무죄 판결로 한국 내에서 반미 분위기가 높아지는 것을 예사롭지 않게 지켜보면서도 공식적인 언급을 자제하는 분위기이다.미국 정부는 지금까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간접 메시지나 토머스 허바드 주한 미 대사의 발언을 통해 사망 사건 자체에 대한 유감을 표명했지만 무죄 판결에 대한 한국인의 분노나 반미 감정의 확산에 대해서는 함구로 일관하고 있다.
이 같은 대응은 미군에 의해 현지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개별적 사건 차원에서 해결, 접수국과 주둔국 사이의 외교 갈등이나 안보상 문제로 비화하는 것을 차단하려는 미국 정부의 기본 방침을 반영한다. 여기에는 미군 범죄 사건이 터질 때마다 한국에서 반미 움직임이 일었지만 결국은 양국 동맹 관계의 근간을 흔들 정도까지는 확대하지 않았다는 믿음이 깔려 있기도 하다.
제임스 릴리 전 주한 미 대사는 최근 워싱턴에서 열린 세미나 참석 후 "특정 사회적 이슈와 결합할 때 한국 내 반미 감정은 격화하는 양상을 띠어 왔다"며 "그러나 어떤 경우든 양국간 마찰은 한·미동맹의 틀 속에서 제자리로 돌아오곤 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접근방식은 결국 한국내의 반미 문제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과 처방보다는 그 때 그 때 사건이 생길 때마다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을 개정하거나 운영을 개선하는 땜질식 대응으로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민간 차원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돈 오버도퍼 전 워싱턴 포스트지 도쿄(東京)특파원은 4일 한국 대선 관련 세미나에서 "한국의 자존심 강한 젊은 세대가 미국과의 동등한 관계를 모색하려는 경향이 SOFA 개정 운동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 내의 역풍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1월 개원하는 미 의회의 상원 외교위원장에 내정된 리처드 루가(공화) 의원은 여중생 사망 사건에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지나치게 반미 감정이 확산되면 자칫 미국 내에서 반한 감정이 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언론들은 한국의 반미감정에 대한 논평이나 분석보다는 한국 내 시위 양상과 사건 경위 등을 사실 전달 차원에서 주로 보도하고 있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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