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병욱 가톨릭대 국사학과 교수광복 후 미국에 의해 수립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남한 정권은 반세기 동안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칠 정도였다. 정치 외교 국방 등 각 분야에서 한미관계는 긍정적 측면도 많았지만 부정적 측면도 발생했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법과 관행에 따라 이 같은 부정적 측면의 핵심을 지적하지 못했다. 반미감정의 발단은 미국이 남한에 대한 점령군 또는 지배자라는 의식에서 나온 교만함과 오만함 때문이다. 최근의 국민반응은 미군 궤도차량 여중생 사망사건 자체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 미국에 대해 숨기고 있었던 불편한 감정이 표출된 것이다. 또 미국을 제대로 비판해야 하는데도 이를 감춰왔던 국민 스스로가 반성하는 행위로 나타난 것이다. 불평등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을 개정한다 해도 반미감정은 누그러지지 않을 것으로 본다.
근본적으로 평등한 외교관계가 성립돼야 한다. 단기간에 많은 점을 개선 할 수는 없지만 건전한 한미관계를 위해 미국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야 한다. 지나친 대미 의존도 때문에 미국을 세계의 중심으로까지 생각하고 있다. 19세기 우리나라가 중국의 굴레에서 벗어나듯 미국을 세계의 큰 나라 가운데 하나라는 정도로 인식해야 한다. 정치인들도 국민의 반미감정을 제대로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 김성한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반미시위나 반미감정의 확산 문제를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이냐 개선 문제로 좁혀가기 보다는 더 큰 틀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반미감정과 반미주의를 구분해야 한다. 반미감정이 고착화 체계화하는 과정을 거치면 반미주의화하는데 현재는 불만표출 상태이면서 점차 반미주의로 가고 있어 우려할만한 상황이다.
여중생 사망 사건과 관련된 문제와 한미동맹, 나아가 한미관계 전반을 분리해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위협이 줄어들거나 사라지면 미군의 역할이 필요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 일본 등 주변국 상황으로 볼 때 미국과 동맹을 통해 안보비용을 절감하는 측면이 있다는 점도 시민사회가 폭넓게 인식시켜야 한다.
문제를 풀려면 정부가 시민단체와 주한미군 또는 미국과의 중재에 적극 나서야 한다. 지금은 시민단체가 주한미군과 집적 맞닥뜨리고 있는 형국이다. 정부가 중간에서 국민의 분노를 털어낼 수 있도록 시민사회와 주한미군 간 토론의 장 등 여러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주한미군도 지역주민과의 '스킨십'이 절실하다. SOFA는 완벽한 것이 아닌 만큼 개정은 언제나 염두에 둬야 하지만 우선은 운용을 개선하는 방안도 배제해서는 안된다.
●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대중적으로 확산되는 반미기류는 오만한 미국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된 정서적 반미이다. 50여년간 반미감정을 표출하는 일은 금기였으나 우리는 이제 스스로 그 금기를 깨뜨렸다. 여중생 사망사건 가해미군 무죄 평결이 한국인들의 자존심을 건드림으로써 오만한 미국에 대한 반감이 전세대, 전지역으로 확산되는 상황이다.
최근의 반미는 과거와는 다르다. 극소수 운동세력이 미국의 분단된 한반도에 대한 간섭을 비판하며 미군 철수를 부르짖던 정치적 반미주의와 달리 미국에 대한 정서적 저항이 폭넓게 확산되면서 일어나는 문화적, 정서적 반미이다.
무엇보다 전통적으로 대미관계에 침묵을 지켜온 장년층과 정치의식이 형성되지 않은 10대까지 동참하고 있는 사실을 주목할 만하다. 반미가 용공과 동일시돼왔으나 민주화의 영향으로 그 같은 정치적 부담이 약해지면서 기성세대가 입을 열게 됐고, 10대,20대 청소년들도 여중생사망사건을 보면서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사건의 울분을 연상하는 등 '미국이 해도 너무한다'는 반감이 퍼져나가고 있다. 월드컵때 스스로 뭉쳤던 경험과 인터넷상의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은 반미감정을 촛불시위와 같은 행동으로 구체화하는 원동력이 됐다.
남북관계도 화해국면으로 옮겨가는 등 상황이 바뀌고 있어 이 같은 추세를 거꾸로 돌리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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