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색소폰 연주자 이정식(41)은 연주가 생활이다. 일주일에도 서너번씩 클럽이나 카페에서 연주를 하니, 악기를 놓는 날이 거의 없는 셈이다. 그의 연주회 소식이 더 이상 새로운 일도 아니지만 8일 오후 5시 호암아트홀에서 호주 기타트리오 드 볼브(D'volv)와 함께 하는 연주회는 미군 궤도차량에 희생된 두 여중생을 위한 곡을 준비한다는 점에서 시사성을 지닌다."재즈는 저항의 음악입니다."
대학로의 한 재즈클럽에서 만난 그는 재즈가 어떤 음악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차별받는 흑인들의 애환을 담아 기존 음악 개념에 반발하면서 태어난 재즈의 기원을 돌아보면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한국에 들어온 재즈는 달랐다. 주한미군 클럽에서 흘러나온 재즈는 선진국의 고급음악이 되었고, 원래의 저항 정신은 거세되었다. 양적으로 늘어난 국내 재즈의 부족한 점이 여기서 드러난다.
"재즈 음악의 정신을 담을 수 있는 연주를 하고 싶습니다. 자유를 위한 몸부림, 사회비판 정신을 살려야 하겠죠." 그러던 차에 효순이, 미선이 사건이 일어났다. "안타까운 마음에 음악가로 뭔가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봤습니다." 결과는 이번 공연에 표출될 예정이다.
그는 또 이번 연주회에서 이흥렬 작곡의 우리 가곡 '봄이 오면'을 재즈로 변주했다. 이정식은 "꽃을 주제로 택한 이유는 여중생들을 못다 핀 꽃으로 본다는 의미로도 생각할 수 있다"며 "잘 될까요?"라고 멋적게 웃는 모습이 친근하다.
그와 호흡을 맞추는 드 볼브는 호주 음악의 특성대로 약간 유럽 쪽에 가까운 정적이고 차분한 연주를 들려주는 그룹이다. 클래식 기타와 포크 기타, 클래식 기타에 포크 기타 줄을 끼운 3 대의 기타와 이정식의 테너 색소폰이 앙상블을 이룬다.
이 편성은 국내에서 처음 시도하는 것이다. 새로운 연주자들과 계속적으로 다른 시도를 해보는 이유에 대해 이정식은 "다른 사람들에 자극받아 나 스스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으며 발전하는 게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연말공연인 만큼 '화이트 크리스마스' '실버 벨' 등 익숙하고 편안한 곡도 연주한다. 그는 하지만 "관객들이 사회 문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연주자의 사상이나 철학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게 재즈의 매력이고, 재즈클럽은 관객과의 교감이 느껴져 좋다"라며 그는 클럽에서 기다리는 팬들 앞으로 나갔다.
/홍석우기자museho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