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공무원인 김모(45)씨는 4년 전 사업하는 친구의 보증을 잘못 섰다가 수천만원의 빚더미에 올랐다. 월급까지 차압 당하면서 어렵사리 원금과 이자를 갚아나갔지만 조금씩 연체액이 쌓이더니 지난해 5월 끝내 신용불량자에 등록됐다. 신용카드는 물론 입출금 통장까지 정지돼 일체의 금융거래를 못하게 된 지 1년 여. 올들어 8월 말 가족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모든 연체 빚을 상환, 신용불량자 딱지를 뗐다.하지만 최근 전세자금 융자를 받으러 은행을 찾아간 김씨는 "신용불량자에서 해제됐더라도 앞으로 2년 동안은 은행거래를 할 수 없다"는 직원의 말에 눈앞이 다시 캄캄해졌다. "단돈 1만원도 안 남기고 그 비싼 연체이자를 다 갚았는데 2년이나 더 신용불량자로 있어야 한다니 말이 됩니까. 이젠 방 한 칸이라도 마련해 가족과 함께 인간답게 살아보려고 했는데…." 김씨가 신용회복지원위원회 사이버민원실에 띄운 하소연이다.
카드 '돌려막기'를 하다 2년 전 신용불량자가 된 박모(28)씨. 올 1월과 3월 3∼4개 카드사의 연체 빚을 모두 상환해 신용불량자에서 해제됐지만 신용불량 전력 때문에 구직서를 낼 때마다 번번이 퇴짜를 맞고 있다. 박씨는 "기술을 갖고 있어도 취업문이 막혀 먹고 살 방법이 없다"고 울분을 토했다.
수많은 신용불량자들이 '신용 전과(前科)'라는 이중족쇄 때문에 갱생에 애를 먹고 있다. 가뜩이나 가계대출 충격의 여파로 신용난민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자력으로 신용을 회복한 사람에게까지 전과자의 낙인을 찍어 금융거래를 제한하는 것은 개인파산사태를 오히려 부추길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다.
6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현행 '신용정보관리규약'상 신용불량자에 대한 기록은 신용불량자가 1년 이내에 빚을 청산하면 1년, 1년을 넘겨 갚으면 2년 동안 보존하도록 돼 있다. 예컨대 A씨가 신용불량자가 된 지 13개월 만에 연체 빚을 갚아 신용불량에서 해제된다 하더라도 해제시점으로부터 2년 동안은 신용불량자와 똑같은 불이익 조치가 계속된다는 것이다. 일부 예외조항(신용등록 사유를 90일 이내에 해소하거나 200만원 이하 소액인 경우 즉시 기록삭제)이 있긴 하지만 대다수 신용불량자들이 1,000만원 이상의 장기 연체자임을 감안하면 이 같은 기록보존 조항은 거의 모든 신용불량경력자에게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신용기록 보존조항이 금융기관들에 의해 자의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높은 만큼 보존기간을 줄이는 등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금융계 관계자는 "신용불량 정보 보존제도가 금융기관의 리스크관리 차원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긴 하지만 지나치게 금융기관 위주로 운용되고 있는 것이 문제"라며 "보존기간을 단축하거나, 같은 신용불량 해지자라도 직업 및 소득 자료를 고려해 탄력적으로 기록을 적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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