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발 태풍의 눈'에는 그가 있다.이상윤(40) 여수 코리아텐더 감독대행(이하 감독)은 요즘 여수에서 최고의 유명세를 타고 있다. 모기업(인터넷 쇼핑몰 사업을 하는 코리아텐더)의 자금난으로 시즌 참여조차 불투명했던 팀을 이끌고 선두권을 고공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치 생활 1년 만에 올 시즌 감독대행으로 사령탑을 맡아 지도자 경력은 2년이 채 안되지만 팀을 선두권으로 끌어올려 코트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그를 여수시 봉대동의 코리아텐더 숙소에서 만났다.
■안정은 내게 안 어울린다, 농구는 나의 꿈
평범한 선수생활을 하다가 실업팀 삼성전자에서 일찌감치 은퇴한 이 감독은 삼성전자 영업사원과 삼성썬더스농구단에서 경리와 총무를 맡았던 프런트 출신. 프런트로서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안정된 삼성의 울타리를 박차고 2001년 6월 코리아텐더의 코치로 부임하며 인생의 승부수를 던졌다. 코치로 데뷔한 지난 시즌 팀 성적은 아쉬운 7위. 지도력에 자신이 생겼지만 팀은 재정난으로 존립조차 불투명했다. 감독 선임을 꿈도 꿀 수 없었던 팀은 "꼴찌를 해도 좋다. 제발 감독을 맡아달라"고 통사정했고 '잃을 것이 없는' 이 코치는 흔쾌히 감독직을 수락했다. 다년계약도 아닌 월봉 600만원 계약. 해임될 경우 한 달 전 통고라는 황당한 조건이었지만 농구를 향한 그의 의지를 막을 수 없었다.
■동가식 서가숙, 그래도 선수는 나의 힘
시즌을 준비하던 여름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며온다. 6월 동수원에 있던 전용연습장이 매각된 뒤 각 대학체육관을 전전하며 눈칫밥을 먹어야 했다. 여수 진남체육관에서 연습할 때는 에어컨이 나오지 않아 땀으로 뒤범벅이 된 코트를 직접 닦기도 했다. 코치 한 명 없이 체육관 섭외, 비디오 분석, 전술개발…. 하나에서 열까지 혼자서 맡느라 감독의 체면을 차릴 여유도 없었다. 그러나 이 감독의 머리 속에는 "어떻게 선수들의 기를 살릴까"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한 달 400만원으로 책정된 식대를 800만원(다른 팀은 1,200만원 정도)으로 인상해달라고 구단에 사정해 선수들이 먹는 데만큼은 신경을 쓰지 않도록 했다. 여수 숙소에서는 선수들 곁에서 묵을 수도 있었지만 불편해할까 봐 일부러 식당 옆의 방으로 옮겼다. 그 결과 시즌 전 연습경기 성적 10승2패. 전문가들은 코리아텐더의 전력을 최하위권으로 예상했지만 시즌을 고대하는 이 감독의 가슴은 뜨거웠다.
■자율은 프로의 생명
4일 친정팀이나 다름없는 서울 삼성에 역전승을 거두고 팀을 공동선두(12승6패)로 복귀시킨 이 감독은 "우리 팀의 승리를 더 이상 이변이라고 하지 말아달라"고 거듭 강조했다. 지도력을 칭찬하면 "나는 선수들의 장점을 찾아준 일밖에 없다" 고 겸손해한다. 다른 팀에서라면 5분도 뛰기 어려울 최민규(24·182㎝)의 슈팅능력과 수비력을 키워 적절한 백업가드로 활용하고, 수비에서 장신 용병을 맡아야 하는 파워포워드 변청운(28·191㎝)에게 공격 때는 외곽슛을 자유롭게 던지게 하는 것 등은 이 감독의 작품이다.
한 번 시작하면 이 감독의 선수 칭찬은 좀처럼 끝나지 않는다. 원주 TG, 대구 동양과 공동선두지만 "용병이 3경기나 빠지고도 12승을 거둔 팀이 있냐"고 반문한다. 올 시즌 6강은 자신있고 선수들의 체력과 정신력을 고려하면 그 이상도 가능하다고 단언한다.
이 감독의 지론은 '프로는 철저히 자율적이어야 한다'는 것. 코치시절 선수들 사생활을 통제하라는 감독의 지시를 받고도 선수들의 늦은 취침을 눈감아줬고 감독이 된 지금도 '연습에만 최상의 컨디션으로 나올 수 있다면 술, 담배도 괜찮다'고 말한다. 경기중 이 감독이 "지시는 내가 하지만 결정은 너희들이 하는 것"이라고 반복하는 장면도 코리아텐더의 벤치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소주 3잔이 적량이지만 요즘 자꾸 이겨 '축승주' 때문에 주량만 늘고 있다"고 행복해하는 이 감독. 불혹의 나이에 인생 반전에 성공한 이 감독은 "팀이 어려워도 최선을 다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그저 즐겁다"며 "앞으로는 헝그리 투혼이 아니라 실력으로 이겼다고 써달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여수=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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