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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의정부와 오키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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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의정부와 오키나와

입력
2002.1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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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전쟁 막바지 미군의 공격을 피해 해안동굴에 숨어들었던 오키나와 주민들은 굶주림과 갈증을 견디지 못하고 굴에서 나온다. 바닷물을 마셔보았지만, 마실수록 목이 말랐다. 이 광경을 본 상륙 미군들이 우호적인 표정을 지으며 물을 주었다. 그러나 주민들은 "귀축미영(鬼畜美英)이 독을 탔을 것"이라고 의심한다. 그 심리를 낌새챈 미군이 물을 마셔 보이며 다시 권하자, 일제히 달려나가 앞 다투어 물을 받아 마셨다. 물론 그들이 주는 음식도 의심 없이 먹었다.■ 그로부터 27년 동안 미국 영토로 편입되었던 오키나와 주민은 미국에 대해 은원(恩怨)이 혼재한 복잡한 감정을 품게 된다. 다시 일본 영토가 된 뒤에도 주둔미군의 횡포와 범죄에 날카롭게 반응한 것은, 전쟁 중 유일한 미군의 일본영토 상륙전 때 너무 많은 피해를 당한 때문이었다. 1995년 미군 병사들의 여중생 납치 성폭행 사건이 발생하자 폭죽같은 저항이 일어났다. 놀란 미국은 클린턴 대통령의 직접 사과로 반미불길을 잡았다. 주둔군지위협정 운용방침도 바꾸었다.

■ 최근 오키나와에서 일어난 유사 사건에 대처하는 미국의 태도는 고분고분하다. 미군 해병대 소령이 오키나와 거주 필리핀 여성에게 성폭행을 하려다 미수에 그친 이번 사건은 사안의 무게로 보아 큰 뉴스거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신고를 받은 미군 수사당국은 곧 조사에 착수했고, 본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일본경찰은 체포장을 발부했다. 주둔군사령관은 즉시 오키나와 현청을 방문해 유감의 뜻을 전했으며, 사건처리도 양국 외교·국방 합동위원회가 협의하는 모양새다.

■ 6월 한국에서 일어난 의정부 여중생 사망사건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오키나와에 비해 우리에게 미국은 근본적으로 다른 나라다. 그 전쟁의 승리로 우리는 35년 일본의 압제에서 벗어났다. 5년 뒤 한국전쟁 때는 미국의 신속한 참전 덕분에 자유 민주주의국가 체제를 지킬 수 있었다. 고마움 뿐 원망이란 있을 수도 없다. 그런데 똑같은 주둔군 병사의 사건을 다루는 미국의 태도가 왜 그리 차별적인지 한국인들은 이해할 수가 없다. 사건을 옳게 처리해 달라는 요구와 반미는 다르다는 걸 미국은 왜 모를까.

/문창재 논설위원실장cjm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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