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선에도 한계가 있어."7년 동안 사귄 애인에게 던지는 차가운 말 한 마디에 브라운관은 꽁꽁 얼어붙는다. "나한테 오빠는 20대의 전부"라며 매달리는 소라(전도연)를 뿌리치고, 씹어 뱉는듯한 말 한 마디 툭 던지곤 휑하니 문을 닫아 거는 그런 애인이 도대체 몇이나 될까. 김도훈의 한마디 한마디에는 독이 담겨있다. "나(를) 버려. 넌 내 예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아"라고 말하는 모습이 퍽이나 잔인하다.
그런 이서진(김도훈 역)의 연기에 눈을 떼기 어렵다. 죽마고우인 매니저 바다(박상면)를 실수로 넘어뜨린 뒤, 바다의 머리에서 흥건히 흐르는 피를 자신의 양복으로 닦는 광기어린 모습에 시청자들은 채널을 돌릴 수가 없다. 12%대에 머무르던 '별을 쏘다'(극본 윤성희, 연출 이장수)의 시청률은 이서진의 독한 연기가 전도연 박상면의 최루성 연기와 맞물리면서 20%에 가까이 수직 상승했다. "1999년 늦깎이 데뷔 이후 MBC '그대를 알고부터' '그 여자네 집' 등에서 올바르고, 집안도 부유하고 공부도 잘하는 역을 했죠."
이서진의 실제 말투는 김도훈의 칼날 같은 매서운 말투와 달리 나직하다. 그는 김도훈을 "악역"이라고 한 마디로 단정짓는다. "한 번 해보고 싶었어요. 남들이 꺼려하잖아요." 섣불리 도전해보기가 어려운 역할이라서 그는 선뜻 김도훈을 받아들였다. 자신이 평가하는 지금까지의 김도훈 연기는? "과장된 부분이 많이 있고, 감정도 넘쳤어요. 앞으로는 그 수위를 낮추려고요. 과장을 해야 지금껏 제 이미지를 확 바꿀 수 있었으니까."
그의 말대로 김도훈은 "우정과 사랑을 배신하고 야망을 택하는 인물"이다. 실제 성격은 어떻냐고 했더니 "흐흐흐" 웃고는 "좋아하고 싫어하는 게 분명한 것"을 비슷한 점으로 꼽았다. "남자라면 당연히 야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같다. "연기자를 위해 헌신한다"는 바다의 매니저관(觀)보다 "자기 자신을 위해 잘 하겠다"는 도훈의 매니저관을 더 좋아한다는 것,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할 수 없는 건 당연하다"고 믿는다는 것도 도훈과 닮았다.
이서진은 "흔히 볼 수 있는 역이 아니라, 뭔가 특별한 직업, 역할"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게 연기의 가장 큰 기쁨이란다. "속이 꽉 찬 배우, 실패에 연연하지 않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그는 미치광이 등 다양한 배역에 과감히 뛰어드는 조니 뎁과, 브래드 피트를 그런 배우로 꼽았다. "지금껏 해보지 못한 다른 성격을 가진 인물에 적응하고 한번도 접하지 못한 감정을 표현하느라 시간이 걸리고 어려웠지만, 해낸 뒤의 보람과 자신감과 기쁨은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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