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주민 김선태(金善泰·60·한국아동문학회 부회장)씨는 정부시책을 선뜻 따랐다가 요즘 톡톡히 낭패를 보고 있다. 7월 구청에서 반상회를 통해 나눠준 새주소 안내문을 보고 가입한 단체와 모임의 등록주소를 변경한 후부터 우편물이 제대로 배달되지 않는 것. 김씨는 "단체 등록주소는 다시 바꿨지만 이미 배포된 회원주소록은 고칠 수 없어 회원들의 저서를 한 권도 받아보지 못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정부가 1997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새주소(도로명 및 건물번호부여) 사업'이 겉돌고 있다. 지금까지 쏟아 부은 돈만 해도 1,100억원에 달하지만 관련 부처간 협의가 이뤄지지 않아 시행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정부의 말만 듣고 사업을 시작한 지자체마다 "가뜩이나 어려운 지자체 재정을 악화시키고 국민들의 세금을 낭비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길거리에 버려지는 세금
행정자치부 주관으로 각 기초자치단체에서 시행 중인 이 사업은 전국의 모든 거리에 이름을 붙이고 건물에 번호를 부여해 집 찾기 불편을 해소하고 막대한 물류비용을 절감하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현재 서울 대전 광주 인천 등 광역시 산하 자치구 등 63개 자치단체에서 사업이 완료됐다. 그러나 구체적인 활용계획이 없어 우편물배달은 물론이고 동네에서 자장면조차 주문할 수 없는 실정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행자부는 1,200여억원의 예산을 더 투입해 2009년까지 나머지 169개 시·군 단위 지자체에서도 사업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예산 반환요청도 불사…지자체 아우성
99년 사업을 시작한 서울시는 올해 6월까지 236억원을 들여 25개 자치구 2만여개의 소로와 골목길 등에 이름판을 붙이고 건물에 번호판을 부착했다. 국비 40억원과 서울시 지원비 104억원을 제외한 92억원은 자치구들이 없는 살림을 쪼갰다. 9월에는 행자부의 시범운영계획에 따라 자치구별로 홍보까지 벌였으나 무산돼 민원만 야기했다.
시 관계자는 "하루에도 새주소 활용을 문의하는 전화가 10여통씩 걸려 온다"며 "당장 활용할 수도 없는데 간판유지비 등으로 시와 자치구가 매년 13억원을 계속 투입해야 한다니 답답한 노릇"이라고 말했다. 급기야 서울시는 최근 "사업추진이 불투명해 질 경우 투입된 예산의 배상을 정부에 요청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관련부처는 혼란 초래한다며 비협조
정보통신부 우정사업국 관계자는 "공식주소와 다른 새주소를 우편주소로 활용할 경우 국민혼란만 초래할 것"이라며 "우편주소로 활용하기 위한 법적 근거가 우선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새주소의 법적주소화는 천문학적인 행정비용을 유발해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김동국기자 dk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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