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꽤 행복(하다고 믿는)한 순간의 박제다. 그러나 이 박제는 엄격한 기준이 있어 흉하게 나온 사진이나 남들 보이기에 민망한 사진은 휴지통으로 사라진다.'스토커'의 원제는 'One Hour Photo'. 한 시간이면 추억이 자판기 커피처럼 쏟아지는 시대. 행복한 누군가가 맡긴 필름을 사진으로 물화하는 순간, 가족도 행복도 없는 사내의 고독감은 더 극대화할 것이다. 그래서 사내는 그들 가족을 자신의 가족이라고 여기기 시작하며, 이렇게 불행이 시작된다.
싸이(로빈 윌리엄스)는 대형쇼핑몰의 사진 현상소에서 일하는 중년남자. 그가 니나(코니 윌슨)의 가족에게 쏟는 애정은 각별하다. 빠듯한 시간에도 사진을 뽑아주고, 아이 생일엔 선물도 잊지 않는다. 니나 가족에 대한 집착이 도를 더해가던 중, 싸이는 니나 남편 윌(마이클 바탄)의 외도 사진을 발견하며 행복을 깨뜨린 자에 대한 응징에 나선다. 가족을 위해 심지어 가정부로까지 변신했고('미세스다웃파이어'), 로봇이 되어서도 가족의 사랑을 느끼고 싶어했던('바이센테니얼맨') 가족 영화의 아이콘, 로빈 윌리엄스가 제목처럼 스토커로 변하는 과정이 꽤나 차분하면서도 실감나게 그려진다.
싸이는 너무 외로웠고, 그들 안 어딘가에 자기의 자리를 잡고 싶었다. 그래서 환상 속에서 싸이는 그들로부터 "삼촌"이라 불린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싸이가 그들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기 위해선 누군가 빠질 사람이 필요했고, 그건 바람 피우는 니나의 남편이었다.
차가운 현상소의 이미지, 그 속에 마치 붙박이장처럼 박혀 있는 로빈 윌리엄스의 창백한 얼굴이 빚어내는 공포감은 때로 슬픔이 공포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니나의 남편을 위협하던 싸이가 그의 방에서 찍은 것은 벌거벗은 두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 문고리며, 수건걸이 같은 가족사진의 주인공이 될 수 없는 사물. 그래서 그가 찍은 사진은 그의 얼굴처럼 고독하다.
싸이가 자신을 해고한 상사를 협박해 굳이 경찰을 끌어들이는 이해하지 못할 결말 대목이 껄끄럽기는 하지만 싸이의 집 벽을 빼곡히 채운 니나와 그의 가족의 사진 수천장은 행복감의 과시가 어쩌면 불행한 이들에 대한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에둘러 증명한다. 마돈나의 '베드타임 스토리'등의 뮤직비디오를 찍은 마크 로마넥이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 6일 개봉. 15세 관람가.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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