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대선 이후 부동산 공약이 단골메뉴로 등장하고 있다. 어떤 후보는 주택 200만호 건설을, 또 어떤 후보는 아파트 반값 공급을 내세워 큰 재미를 보았다. 이번 대선에서도 투기열풍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뒤끝인지 후보들마다 부동산 공약을 앞 다퉈 발표하고 언론의 관심도 뜨겁다. 후보들이 내세우는 부동산 공약은 일부 중복된 내용도 있으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어 눈여겨볼 대목이 많다. 이 중 몇 가지만 요약하면,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는 수도권지역 여러 곳에 자족기능을 갖춘 미니신도시를 건설하여 임기 중에 주택 230만호를 공급할 계획이다.이에 소요되는 택지는 공영개발에 의해 저렴하게 공급되기 때문에 아파트 분양가를 30% 이상 인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젊은 서민가족들이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도록 청약제도 개선과 주택자금 지원을 약속한 것도 눈에 띈다. 반면에 노무현 민주당 후보는 수도권 과밀을 부추기는 신도시 건설보다는 행정수도를 대전으로 이전하면 지역간 균형발전뿐만 아니라 수도권 주택문제도 해소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서민들의 주택난을 해소하기 위해 재정을 투입해서라도 매년 15만∼20만호의 임대주택을 건설할 것이며, 서민주택 안정을 위해 전월세 가격을 통제하고, 전국의 노후불량주택 40만호를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후보들이 내세우는 부동산 공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쉬운 구석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이 후보는 주택가격 안정을 위해 임기 중 주택공급물량을 230만호(연간 46만호)로 확대한다고 했으나, 1990년 이후 연평균 56만호의 주택이 신규로 공급된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그 수치는 줄어든 셈이다. 현재도 대단위 택지는 모두 공영개발로 이루어지고 있고 신규 공급물량은 줄어드는데 어떻게 아파트 분양가를 30%이상 내릴 수 있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이미 수도권에 조성되어 있는 대규모 신도시들이 모두 베드 타운으로 전락한 마당에 미니 신도시들이 어떻게 자족기능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무주택 젊은 서민층들의 내 집 마련을 위한 정책적 배려가 정당한가에 대해서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주택보급률이 110%를 상회하는 선진국에서도 자가 보유율이 60%를 넘지 않는다는 사실은 주택은 소유가 아니라 주거의 대상이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저소득층의 주거안정에 기여할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 건설이 더 시급한 과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노 후보는 행정수도 이전을 통해 지역간 균형발전과 수도권지역의 주택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했으나, 행정수도 이전은 서슬이 퍼렇던 군사정권에서도 포기했던 일인데 과연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을지, 얼마나 오랜 세월이 걸릴지, 재원조달 계획은 타당한 것인지 등 시간을 두고 충분한 검토가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서민들의 주택난을 해소하기 위해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더라도 연간 15만∼20만호의 임대주택 건설에 필요한 재정부담 문제도 고려해야 할 사안이다. 서민주택 안정을 위해 전월세 가격을 통제하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져 보인다. 현재도 전세가격을 5% 이상 올릴 수 없도록 되어 있지만 유명무실하게 된지 오래다. 이번 대선에서 후보들은 자신의 정치적방향에 따라 나름대로 색깔 있는 부동산 공약을 제시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그러나 공약의 실현 가능성이나 타당성 여부를 검증하는 데는 다소 소홀한 감이 없지 않다. 특히 주택문제의 양상이 양에서 질의 문제로 전환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후보들이 최근의 수도권 주택문제에 지나치게 얽매인 나머지 이러한 흐름을 반영하는 데는 소홀한 것 같다. 우리 사회가 노령화, 핵가족화, 도시화를 겪으면서 노인 주택, 독신자 주택, 농촌 주택 등과 같은 새로운 문제가 분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선 후보들이 이 분야에 대해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임 덕 호 한양대 디지털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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