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현장에서 편집을 한다. 그것이 딱 100분이 되어 따로 편집할 필요가 없었다. 남의 돈으로 찍는데 함부로 할 수 있나. 더욱이 나같이 작은 영화를 하는 사람이…."이무영(38)은 직업이 많다. 해박한 팝 칼럼니스트, 연예정보프로그램의 리포터, '공동경비구역 JSA' '복수는 나의 것'을 쓴 시나리오 작가에 많은 비난과 약간의 마니아를 얻은 '휴머니스트'(2000년)의 감독. 이런 '인간 이무영'에 대한 평가에는 중간이 없다. 주변에서는 '성실하고 괜찮은 사람'이라는데 TV를 통해 보여지는 전문가도, 날라리도 아닌 그를 '밥맛'이라고 평하는 이도 있다.
그의 영화에 대한 반응도 마찬가지인데, '철없는 아내와 파란만장한 남편, 그리고 태권소녀'는 이런 극단적 평가에 더 단단한 쐐기를 박게 될 것이다. "상업적으로 성공하려면 중간을 넓혀가야 겠지만 하고 싶지 않다." 꽤 오만해보인다. 이런 말을 하는 자신을 그는 또 평가한다. "너무 많이 알거나, 철이 없거나."
'철없는…'는 스타 개그맨, 철부지 아내. 그리고 개그맨의 아이를 낳은 태권소녀의 삼각관계를 '셋이 한집에서 잘 먹고 잘 살았다'로 끝냈다. 한국영화 사상 가장 황당하고, 가장 진보적인 결말이다. "동성애와 이성애를 긍정이나 부정이 아닌 담담히 타인의 존재방식으로 봐달라"는 게 감독의 주문. 기이한 동거는 물론 볼 일이 급해 후다닥 변기에 앉는 순간, 뚜껑이 닫히는 황당한 사태도 모두 실화지만 그가 예상하는 관객 반응은? "에이, 거짓말."
그의 영화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정답이 있는 사건에서 '오답 확률'을 찾기 때문이다. "명사 A씨와 젊은 아내 B씨가 이혼하자 사람들은 아무것도 없는 여자가 남편 덕으로 성공한 후 이혼했다며 여자를 욕했다. 그러나 가까이서 지켜본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사람관계에 대한 외부 평가는 정답보다 오답일 확률이 크다."
"다음에는 '헤픈 미혼모' 얘기를 해보겠다니, 한 페미니스트가 펄쩍 뛰며 '미혼모가 성적으로 헤프다는 것은 편견'이라고 비난했다. 그래서 '헤픈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이 편견'이라고 받아쳤다." 그의 태도는 신학도처럼 진지한데, 왜 관객들은 그의 '의지'를 수용하지 않을까. "관객들은 자신의 편견을 공격 당하면 불편해 한다."
고교와 대학을 미국에서 마친 그는 "교사들이 괴롭히지 않아 좋았지만 위선적인 사회" 미국에서 B급 영화의 세례를 받았다.
초기의 데이비드 린치, 샘 페킨파, 아벨 페라라 등 선호하는 감독 목록을 보면 그의 기이한 취향이 이해가 된다. 그러면서도 그는 "첫 영화에서 사람을 너무 많이 죽였다"는 목사인 아버지의 말씀과 이제는 어느 한 곳에 정착해야 할 것 같은 데 "길이 보이지 않아 고민하는" 생활인이다. 좀 다른 방식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은, 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사는 것만큼 쉽지 않은 일이다. 그를 보면.
/박은주기자 jupe@hk.co.kr
● "철없는…" 어떤 영화
완성도를 두고 가장 논쟁적인 올해의 영화가 될 것 같다. 스토리는 조금 황당하다. 잘 나가는 개그맨 오두찬(최광일)이 부정한 아내 뒤를 쫓다 추락한다. 이어 이들의 기막힌 인연이 소개되는데, 철없는 아내 배은희(조은지)와 태권소녀 황금숙(공효진)은 고교동창. 황금숙은 배은희를 사모해 범죄까지 저지르지만 배은망덕한 배은희는 오두철과 눈이 맞아 결혼한다. 그러나 황금숙과 배은희의 동침은 계속되고, 오두찬은 황금숙과 하룻밤 자는 것을 대가로 이혼을 허락한다. 황금숙이 임신을 하며, 셋의 관계는 또 꼬인다.
관객이 지루해 할 무렵이면 2030년의 화자(話者)가 "지루하냐"하고 끼어 들고, 황당한 플래시 백(전교조 스승과 은희의 여관장면 등)과 반전이 곳곳에 숨었다. 문제는 이런 형식과 갖가지 해프닝, 파격적인 결말이 대중의 입맛에 맞을까 하는 것. 그러나 모든 영화가 가정식 백반일 필요는 없다. 걸작인 한정식도 있는가 하면, 컵라면에 생크림을 토핑한 새로운 문법도 필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이 영화는 존재가치가 충분해 보인다. 물론 '가문의 영광'이나 '광복절 특사'류의 대중적(?) 웃음을 기대한다면 실망하겠지만. 6일 개봉. 18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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