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와 인터넷의 조우가 낳은 걱정거리는 음악이나 영화 파일의 거래 같은 저작물 도용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LA 타임스는 최근 영화 스튜디오들에게 촬영에 쓴 의상이나 소품도난사고가 인터넷의 경매망과 연결돼 심각한 근심거리로 떠오르고 있다고 보도했다.할리우드의 영화가 전세계의 동경의 대상으로 자리잡으면서 영화 속의 옷이나 소품이 수집가들의 대상이 되고, 몰래 훔쳐진 그것들이 이베이 같은 인터넷 경매사이트를 통해 전 세계를 통해 거래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가장 유명한 도난 사례로는 올해 기록적인 흥행을 올린 영화 '스파이더 맨'의 의상. 영화가 한창 촬영 중이던 지난 4월 LA 소니 스튜디오에서 밤사이 스파이더맨 의상 4벌이 없어졌다. 일일이 손으로 꿰매서 만든 의상들은 컴퓨터그래픽으로 도안된 특수한 거미줄 모양의 형상을 그려넣은 것으로 한 벌에 5만 달러의 가치를 가진 것들이었는데, 꼭꼭 자물쇠로 채워진 의상실 안에서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소니사는 2만5,000달러의 현상금을 내걸었고 형사들은 이 옷을 찾아 세계를 헤매야 했다. 할리우드의 안방에서 할리우드 도난영화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서둘러 새 의상을 제작해 촬영을 마친 소니사는 경찰의 도움으로 사고 18개월 만에 의상을 찾았다. 하나는 LA에서, 두개는 뉴욕에서였지만 마지막 하나는 멀리 일본에서였다. 경찰은 수집가들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15만 달러짜리 배트맨 의상과 96년 워너 브러더스사에서 사라진 마네킹도 찾는 수확을 거두었다.
스튜디오들은 최근 몇 년 동안 촬영장 출입통제, 감시 카메라 설치, 보안 경관 배치 등 도난사고 방지에 만전을 기하고 있지만, 도난사고가 끊이지 않아 골치를 앓고 있다. 워낙 수집가들의 수요가 높기 때문이다. 여기에 자발적인 인터넷 경매사이트에서는 물건의 출처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 것이 관례이어서 장물거래에 대한 죄의식마저 없는 상황이다.
영화의 소품은 양성적인 시장을 통해서도 종종 거래돼 왔다. 험프리 보가트 주연의 명작 '말타의 매'의 매 조각상은 크리스티 경매에서 39만여달러에 팔린 적이 있다. 오리지널 포스터 등도 영원한 수집 대상이다. 하지만 요즘처럼 영화 의상과 소품이 수집대상으로 떠오른 것은 확실히 인터넷의 보급과 함께 일어난 현상이다. 십여 년 전만 해도 할리우드의 촬영장근처에는 내다버린 옷들을 주워가는 것을 일로 삼던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촬영이 끝나면 아무도 의상이나 소품을 폐품 이상으로 보지 않았다. 심지어 '오즈의 마법사'에 쓰였던 도로시의 붉은색 구두 같은 소품들도 이런 식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이미 인터넷에 광범위하게 형성된 할리우드 기념품 시장 때문에 스튜디오들은 더 이상 소품이나 의상을 안이하게 관리할 수는 없게 됐다. 양성화된 소품 경매 통로가 확보되지 않는 한 영화 제작에 영향을 미칠 도난에의 욕구가 잠재워지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윤정 재미영화프로듀서 filmpoo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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