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고강도 가계대출 억제대책으로 가계대출 폭증에 따른 가계발(發) 금융위기의 우려는 잠시나마 잦아들고 있다. 위기의 싹을 자르기 위한 정부의 선제적 조치로 가계대출 증가속도가 11월이후 크게 둔화하고 있는 것. 그러나 부풀대로 부풀어진 풍선은 조심스럽게 바람을 빼야 하는 법. 일시에 가계 돈줄을 아예 막아버리는 충격요법은 위기의 해결책이 아니라, 위기를 앞당길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가계대출을 연착륙하기 위한 억제대책의 완급조절과 이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양산되는 신용난민에 대한 안전망 확보가 필요하다는 얘기다.■대세는 꺾였다
정부는 가계대출이 많은 은행에 대해서는 이익이 줄어드는 구조(대손충당금 상향)를 만들고, 다른 한편으로 직접규제(담보비율 인하, 은행별 모니터링)하는 방식으로 지난 10월부터 가계대출을 본격적으로 죄여왔다. 이 결과 11월 들어 20일까지 가계대출 증가액은 6,000억원으로 10월달 같은 기간(3조원)의 20% 수준으로 줄었다. 가계대출 붐의 대세는 일단 꺾인 셈이다.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중 하나인 영국의 피치IBCA도 "가계부채 증가와 신용카드 연체율 상승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상존하지만, 한국 금융당국의 적극적인 조치로 금융권이 위기를 겪지는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충격요법의 부작용
그러나 일각에서는 정부가 가계대출 증가에 급제동을 거는 데만 성공했을 뿐, 연착륙을 위한 미세조정(fine-tuning)에 실패, 신용불량자를 과다하게 양산하고 자산가격 하락을 지나치게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민간 경제연구소 한 관계자는 "가계대출에 대한 정부대책이 극에서 극으로 흐르면서 가계대출 증가속도를 잡는 게 아니라, 절대 규모 자체를 감소시킬 수 있다"며 "이는 냉온탕식 부동산대책의 재탕으로, 정책의 묘미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국민은행은 지난달 말부터 카드론 서비스와 자영업자에 대한 신규카드 발급을 중단하는 한편, 세 군데 이상 현금서비스를 받는 고객들에게는 현금서비스 한도를 대폭 축소했다. 국민은행이 먼저 치고 나온 이상 다른 은행들은 가계대출 규제가 늦을수록 불량고객만 인수하게 돼, 손해를 뒤집어쓸 수 있다는 판단에서 너도나도 가계 돈줄을 막게 될 가능성이 높다. 외환위기 이후 금융기관이 기업대출을 과다 회수, 멀쩡한 기업까지 망하게 한 것처럼 갚을 능력이 있는 사람까지 막다른 길로 내몰 수 있다는 것이다.
■대출억제 완급조절 할 때
지난 7월이후 신규로 신용불량자로 등재된 사람은 모두 21만8,000명. 그러나 금감원에 따르면 7월이후 개별 금융기관의 신용회복지원 프로그램으로 신용불량자 등재를 면한 사람이 10만∼20만명 정도에 달하기 때문에, 최근 신용이 한계선상에 도달한 사람은 40여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달부터 일선 금융기관의 가계 돈줄 옥죄기가 본격화하면 신용난민은 급속도로 증가할 전망이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최소한의 채무재조정만 있으면, 신용불량에서 탈피할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도덕적해이를 조장하지 않는 범위에서 개인워크아웃제도 등의 안전장치를 강화, 구제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특히 자산가격이 급락할 경우 대출을 받아 집을 장만했던 중산층의 이자부담이 급증할 수 있는 만큼, 가계대출 억제대책의 완급조절에 나서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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