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麵)은 한국인이 밥 다음으로 좋아하는 음식이다. 고려시대에도 기록이 있으니 역사도 깊다. 그러나 요즘은 외래 면에 밀려 우리 고유의 면 문화는 빛을 잃어가고 있다. 각 지방이 간직하고 있는 우리의 면을 살려보자. 재료와 조리법에 따라 다양한 국수가 있다. 국수와 함께 말아 내놓는 그 곳의 인심이 어우러지면 맛과 향기도 색다르다. /편집자주
콧등치기국수. 강원 정선의 국수다. 이름부터 재미있다. 아니 좀 이상하다. 왜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 콧등치기국수는 메밀로 만들었다. 그런데 면발이 무척 굵다. 어린아이의 손가락 정도이다. 일반적인 소면이 연필이고, 칼국수가 대나무자 정도 된다면 콧등치기국수의 면발은 거의 야구방망이이다. 굵으니까 잘 구부러지지 않는다. 면을 후루룩 들이켤 때 국물 속에서 엉켜있던 굵은 면발이 스프링처럼 일어나 콧등을 친다. '툭' 소리가 날 정도이다. 그래서 이름이 그렇게 붙었다.
강원도의 맛은 대중적으로 인기가 별로 없다. 무미, 무취라고 해야 옳다. 특히 자극적인 입맛에 길들여진 도시인들에게 더욱 그렇다. 그러나 강원도의 맛에는 은근한 중독성이 있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없이 먹었는데 뒤돌아서면 왠지 그리워진다.
친해지기가 어렵지만 일단 가까워지면 빠져나가기도 어렵다. 콧등치기국수가 그런 중독성을 가진 대표적인 강원도의 음식이다. 최근 몇 년간 정선이 5일장, 꼬마열차 등으로 관광지화하면서 이 국수를 아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들 중에는 단지 그 맛이 그리워 멀고 먼 정선으로 향하는 사람도 있다.
메밀을 속껍질채 간다. 가루의 색깔은 거의 검정에 가깝다. 가루에 물을 붓고 여러 번 치대어 반죽을 한다. 칼국수처럼 썰거나 기계로 면을 뽑는다.
국물을 만드는 방법이 다른 지방의 국수와 완전히 다르다. 멸치로 국물을 내고 된장을 푼다. 햇된장이라야 제맛이 난다. 끓는 국물에 우거지, 감자, 호박 등을 넣어 다시 끓인다. 여기까지는 그냥 된장국이다. 만들어놓은 면을 집어넣고 다시 끓이면 된장국은 완전히 다른 화합물이 된다.
첫 젓가락의 감상은 밍밍하다. 그런데 부담이 없다. 두번째 젓가락부터는 뭔가 남는다. 혀보다는 코가 먼저 느낀다. 구수한 된장과 구수한 메밀이 만들어내는 구수함의 시너지 효과를 실감한다. 확실한 것을 느낀 이후부터는 말할 겨를이 없다. 식탁에서 대화가 사라진다.
정선의 콧등치기국숫집은 대부분 허름하다. 지역경제의 열악함도 이유겠지만 허름해야 콧등치기국수의 제맛이 나기 때문에 증·개축을 할 생각이 없다. 주인들의 마음씨도 허름하다. 인심이 좋다는 얘기다. 거의 냉면사발만한 그릇에 찰랑찰랑할 정도로 국수를 내온다.
옆에는 고봉으로 담은 밥그릇도 놓인다. 김치는 물론 정선 산골의 향기를 담은 산나물 등 반찬 7∼8가지가 기본이다. 일단 양에서 질린다. 그러나 열심히 콧등을 적시며 먹다보면 어느새 밥그릇까지 비어있다. 고통스러울 정도로 배가 부른데, 주인장의 한마디에 또 기가 질린다. "밥 좀 더 드릴까요?"
/글=권오현기자
사진=여행작가 김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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