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의 유전자변형(GM) 식품 수출국인 미국이 GM 식품 수입을 금지하고 있는 유럽연합(EU)을 상대로 불공정 무역 관행 제소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1년 전부터 시작한 세계무역기구(WTO)의 다자간 무역협상이 최근 농산물 협상 등에서 난관에 봉착한 가운데 GM 식품 관련 분쟁으로 EU 국가들은 더욱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미국 무역 담당 관리들은 EU가 올해로 4년째 계속해서 미국산 GM 식품 수입을 봉쇄한 데 대해 WTO에 제소하도록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고 영국 BBC 방송이 2일 보도했다.
과거 미국은 유럽의 '반(反)생명공학 정서'를 고려해 GM 식품 수입 거부에 대한 공식 이의제기를 자제했으나 최근 들어 이 같은 관행을 묵과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하고 있다고 이 방송은 전했다.
폴 오닐 미 재무장관도 유럽의 GM 식품 수입 금지에 대항해 강경 조치를 취하는 데 찬성하는 쪽이다. 미 관리들은 옥수수 기름에서 동물 사료에 이르는 GM 작물에 대한 유럽의 금수 조치로 미국 내 옥수수 재배농가만 연간 2억 달러 가량의 손실을 입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이 강경노선으로 돌아선 것은 EU의 입장에 동조해 식량 지원이 필요한 아프리카의 빈국들까지 미국산 농산물 수입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특히 잠비아의 원조 식량 거부 결정이 기폭제가 됐다. 잠비아 정부는 유럽 등을 시찰하고 온 국내 과학자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10월 말 미국이 원조하는 2만6,000톤의 GM 옥수수를 거부하기로 했다. 250만 명 이상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지만 레비 음와나와사 잠비아 대통령은 GM 식량을 "독극물"이라고 비난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미 국무부 관리들은 이라크 문제 등 외교 현안이 중요한 현 상황에서 EU와의 무역 분쟁은 적절하지 못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라크 전쟁에서 EU의 지지를 얻는 것이 필수인데 무역 분쟁이 일어날 경우 유럽의 여론이 악화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앞서 EU와 미국은 2000년 GM 식품을 수출할 때 '예방의 원칙'을 적용해야 하며 소비자 보호를 위해 GM 식품에 자발적으로 표시제를 도입한다는 내용의 몬트리올 바이오 안전 협약에 서명했다. 하지만 올해 말까지 타결 시한을 정했음에도 GM 식품표시제의 구체적인 시행 방안에 관한 협상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EU는 GM 물질이 0.9% 이상 들어 있을 경우 의무적으로 GM 식품 표시를 하도록 최근 합의했다.
한편 환경보호론자들은 미국이 EU의 GM 식품 수입 금지 문제를 WTO에 제소해 승소한다 하더라도 유럽 소비자들이 GM 식품을 사먹게 만들지는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과거 미국산 쇠고기 호르몬 함유 논란 때도 결국 EU는 미국산 쇠고기 제품 수입을 허용하지 않고 매년 1억 달러의 벌금을 내는 쪽을 택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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