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로와 비방의 네거티브 선거운동이 없었던 적은 없다. 지난 주말 한나라당이 제기한 국정원 도청의혹은 전형적이다. 그리고 일단 대형급 폭로다. 내용으로 봐서 선거 초반에 나올 것이 아닌 듯해 보일 만큼 대형이다. 국민의 정부의 국정원이 도청을 전방위로 했다는 의혹 자체가 그런 데다 그 내용이 가히 권력의 타락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두 가지 점에서 특히 그렇다. 국정원 내부가 어떻길래 이 지경이냐는 등의 논란에 앞서 폭로내용에는 바로 정보기관의 범죄 사실이 적시돼 있는 셈이다. 또 인권을 내세운 대통령과 정부의 정책명분 때문에도 도청이 자행됐다는 사실을 이 정부는 절대 긍정할 수 없다. 따라서 한나라당이 공개한 도청자료에 대해 국정원은 괴문서라고 반박할 수 밖에 없게 돼 있다.한나라당이 그런 문건들을 어떻게 입수하게 됐는지가 궁금하지만, 그리고 국정원과 민주당이 바로 이 대목을 들어 역공을 가하지만 한나라당이 순순히 이를 밝힐 수도, 밝힐 리도 없다. 선거에서 폭로는 마치 전쟁터의 저격과도 비슷하다. 뒤에 숨어 총을 쏜다고 비겁하다는 비난이 통하지 않는 것과 같다. 상대보다 더 많은 정보를 확보한 채 폭로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데 골몰할 한나라당에게 정보의 소스를 밝히라는 요구는 마이동풍일 것이다.
민주당은 전적으로 한나라당에 적대적인 것 같지만 유심히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폭로 초기 민주당은 한나라당에게 제보자와 자료입수 경위를 밝히라고 입증을 요구하면서도 사실일 경우에는 정부가 책임을 져야한다고 날을 양쪽으로 세웠다. 유권자를 상대로 정부와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선거를 치러야 하는 집권측의 일선 정당으로서 당연한 계산이다. 그러나 폭로의 목표가 노무현 후보를 향하고 있음이 분명해 진 만큼 이는 극력 차단해야 한다.
대중에게 이 폭로는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언제나 베일에 싸인 존재, 그리고 막연한 피해의식을 갖게하는 정보기관의 행태로 도청의혹이 터져 나왔으니 그 속내의 일단을 들여다 볼 수 있게된 충족감이 있을 수 있다. 입증책임에 대해 한나라당에 가해지는 정치적 비난에 기웃하겠지만 아마도 그 문서들이 괴문서라는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할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순전히 도청자료이든, 일반적인 정보활동을 담은 보고문서이든, 문건의 성격을 둘러싼 논란을 궁금해 하면서도 그 내용들이 날조라고 믿지는 않을 것으로 봐야한다.
선거에서 네거티브 전략은 불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승부수적 속성을 갖고 있다. 우세한 쪽에서 네거티브 방식을 일부러 쓰는 일은 없다. 단순하고 반사적인 충격을 던져 최대의 효과를 노리는 전략이지만 자칫 역효과가 오면 거꾸로 치명적이다. 폭로에 대해 입증의 책임이 요구되는 것이 그래서이다. 그러나 굳이 입증할 필요도 없이 그렇고 그런 것으로 폭로를 인정해 버리는 대세가 유권자들에게 퍼져 있다면 문제는 다르다. 다른 한편으로 한나라당의 폭로가 반DJ 정서를 자극하는 기존전략의 연장선 상에 불과하다는 점도 주목거리다. 우리 국민들은 권력과 공작의 문제에 특히 민감하다. 두 가지가 뒤섞인 이번 도청의혹 폭로에 유권자들의 판단이 어디로 기울어 있을지 판가름 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조 재 용 정치부장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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