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구기동 북한산국립공원의 구기매표소 바로 앞에는 지금 대형빌라의 신축 공사가 한창이다. 암벽을 깎아 흰 속살을 드러낸 공사장의 굉음이 겨울산을 쩡쩡 울린다. 등·하산길 등산객들은 얼굴을 찌푸리며 가슴아파 하는 모습이다.천혜의 절경 북한산의 구기동자락이 호화빌라로 신음하고 있다. 10여년을 넘게 산세를 야금야금 파먹은 난개발도 모자란 듯 아직도 호화빌라와 거대 저택들이 산자락을 깎아내고 있다.
매표소 앞 빌라공사장 10여m 아래 3곳에서도 공사가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 아찔해보이는 비탈 위에서 굴삭기가 벼랑을 도려내고 있고, 바로 밑 음식점 증축 공사장은 옛 건물을 허무느라 분주하다. 그 옆엔 고급 주택이 들어설 축대가 한키 이상 버티고 서서 본격 공사만을 기다리고 있다.
남편과 함께 산을 찾은 박선화(61·서울 도봉구 방학동)씨는 "하산길 공사장 옆을 지나려니 산에서 느꼈던 상쾌함이 싹 가셨다. 이런 식으로 하다가는 빌라가 산꼭대기 대동문 앞까지 들어서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남편 김순경(64)씨도 "개발업자들은 그렇다 치고 명산에 끊임없이 건축허가를 내주는 당국은 뭐 하는지 모르겠다"고 혀를 찼다.
구기동 자락이 본격적으로 망가지기 시작한 것은 10여년 전부터. 1990년대 초 준공한 이북5도 청사는 정부가 앞장서 환경을 훼손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산허리를 깊숙이 잘라내고 들어선 이 흰 대리석 5층 건물도 이젠 건덕빌라, 현대그랜드빌에 이어 최근 완공한 데스떼빌리지 등 초호화 빌라에 포위돼 있다. 요새처럼 자리잡고 있는 빌라들 때문에 등산로 입구에선 북한산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이북5도청 맞은편 자락도 산등성이 팔부능선까지 집들이 치고 올라가 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답답하게 한다. 그 꼭대기에 막 완공돼 분양중인 형인 스카이빌은 위압적으로 북한산을 내려보고 있다.
불광동에 사는 정지인(45)씨는 "북한산은 모든 시민의 것인데 산을 보며 거품목욕을 즐기는 일부 소수의 욕심 때문에 산 경치가 엉망이 됐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그러나 관할 종로구 관계자는 "사유권 침해 등의 문제가 있어 개발을 무조건 막을 수만은 없다"는 대답만 반복하고 있다.
녹색연합 녹색도시위원회 유상오 위원장은 "일본의 경우 녹지 지역총량제 등을 적용, 더 이상의 훼손을 막고 있다"며 "국립공원의 잠식을 막는다는 시민적 합의의 도출을 통해 토지 소유주가 다른 곳으로 이전할 경우 인센티브를 주는 등의 적극적인 방법을 검토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글·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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