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에 나선 후보들이 속속 '국정원 수술'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민주당의 노무현 후보가 이미 지난달 30일 부산 유세에서 "국내 사찰업무를 중지시키고 해외 정보만 수집, 분석하는 '해외정보처'로 바꾸겠다"고 제시한 바 있다.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도 2일 "정치사찰과 도청을 관행적으로 해 온 국정원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국정원의 불법도청 의혹을 대선의 쟁점으로 부각시키고 있는 한나라당으로서는 예상할 수 있는 전략적 수순이었다.지금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하고 있는 불법도청 의혹의 사실 여부와는 별개로, 국정원이 끊임없이 정쟁(政爭)의 중심에 설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국내 정보 수집활동 때문이다. 명목이야 어떻든 정치 사회 경제 등 각 부분에 걸쳐 세칭 '연락관'(IO)을 두고 돌아가는 정보를 수집해 왔던 것은 분명 사찰이었다.
국가이익에 비추어 순기능의 측면이 있기 때문에 오랫동안 관행적으로 지속돼왔다고 변명할지라도 이 일은 오래 전에 없어져야 했다. 민주주의를 한다는 나라에서 정보기관원이 국회, 정부 기관, 언론사, 기업체 등의 주변을 맴돌며 무차별적인 정보수집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문제는 실천이다. 민주화 투쟁으로 평생을 보낸 김영삼·김대중 두 대통령은 모두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에 정보기관의 대대적인 개혁을 약속하면서 국내 정보 수집활동의 근절을 다짐했다. 하지만 '밥 먹기 전과 밥 먹은 후의 생각이 다르다'는 말처럼 이 약속들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대선에 각 당 후보들이 거의 똑같이 내놓은 공약도 아직 신뢰감이 가지 않는 게 사실이다. 만약 이번에도 정보기관의 개혁이 또다시 공염불로 그치게 되면 국정원은 정쟁의 대상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든 오늘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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