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농구의 신이 있다면 두 사람의 만남을 그의 섭리(攝理)로나 설명할 수 있을까. 지난 10여년 간 한국농구 최고 스타였던 '농구 9단' 허 재(37) 플레잉코치와 다가올 10년 동안 한국농구의 기둥 노릇을 할 김주성(23·205㎝)이 올 시즌 같은 원주 TG유니폼을 입고 코트를 누비고 있다. 기대에 걸맞게 '허―김' 듀오는 지난 시즌 9위였던 TG를 올 시즌 공동선두(2일 현재 11승6패)로 올려놓았다.
3연패(連敗)로 TG가 4위로 주저앉아 있었던 지난 주 강원 원주시 행구동의 숙소에서 허 재와 김주성을 만났다. 새내기 김주성의 표정이 굳어 있었던 반면 허 재는 "이제 몇 경기나 했다고…"라며 넉살 좋은 웃음으로 기자를 맞았다.
사제 그리고 선후배 "주성이가 함께 코트에 뛰니까 형이라고 부르지, 감독보다 두 살 아래인 저를 어떻게 형이라고 부르겠어요. "이제는 염색을 해도 흰 머리가 드러나는 허 재는 중앙대 14년 후배 김주성이 대견하기만 하다. 김주성은 "대학 때 가끔 만나기는 했어도 허 재형하고 함께 뛸 줄은 몰랐어요"라며 어릴 적 우상과 같은 팀에서 뛴다는 사실이 아직도 실감나지 않는 모양이다.
최고 관심사는 김주성의 프로무대 적응여부. 김주성은 "처음에는 멋 모르고 뛰었는데 10경기를 넘기니 힘이 부치더라구요. 지나친 관심도 부담이 되고요"라고 말한다. 허재는 "대학 때는 라이벌이 없어 골 밑에 서 있기만 해도 30∼40점씩 넣었지만 프로에서는 힉스 같은 탄력 좋은 용병들도 수비해야 하고 규칙도 바뀌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것"이라며 슬쩍 분위기를 바꿨다.
17경기를 치른 김주성은 경기당 15.4점, 8.76개의 리바운드로 신인중 제일 뛰어나다. 블록슛은 국내선수중 최고(경기당 2.18개)다. 허 재가 보기에 김주성은 성공적인 첫 시즌을 보내고 있다. "서장훈(28·서울 삼성)과 자꾸 비교하는데 장훈이는 힘으로 골밑을 지킨다. 주성이는 탄력이 장기다. 용병하고 같이 뛰어올라 블록슛을 할 수 있는 선수는 주성이 밖에 없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경기중에도 쉴 새 없이 위치선정, 수비, 속공 등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하는 것도 김주성을 명실상부한 최고 센터로 만들고 싶은 욕심때문이다.
화두는 체력 허 재는 농구 인생의 말년에 김주성을 만나 우승을 노리게 됐지만 사실 미안한 감정도 없지 않다. 자신은 물론 김승기(30), 양경민(30), 데릭 존슨(31) 등 팀의 주전들이 모두 30대여서 김주성에게 수비 부담이 가중되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팀이 지더라도 주성이를 좀 보호해줬으면 하는 것"이 허 재의 솔직한 심정이다. 허 재가 그랬던 것처럼 김주성은 한국농구를 이끌어갈 스타이기 때문이다. 화두는 곧장 체력으로 넘어갔다. 나이는 속일 수 없는지 두주불사로 유명한 허 재도 올 시즌에는 숙소에서 맥주 한두 캔을 마시는 정도 말고는 술을 끊었다. 올 시즌 출장시간(경기당 25분)은 많이 줄었지만 포인트 가드로 전업한 허 재는 어시스트 5.24개(전체 6위)로 녹슬지 않은 기량을 선보이고 있다.
김주성에게는 역시 체력보강이 지상과제다. "올해 중반까지만 해도 꾸준한 웨이트트레이닝으로 몸무게를 100㎏가까이 늘렸는데 부산아시안게임 직후 시즌에 들어가면서 몸무게가 5㎏ 정도 빠졌다"고 김주성은 아쉬워한다.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이고 몸무게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힘 좋은 용병들과 맞서려면 체중이 좀더 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승 그리고 NBA 한 때 미 프로농구(NBA) 진출도 꿈꿨던 허 재는 후배 김주성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신장이나 기술에서 아직은 부족한 상태지만 하체에 근력만 붙고 꾸준히 NBA캠프에 참가한다면 가능성은 있다'는 것이 냉정한 평가다. 허 재와 김주성의 만남은 과연 우승으로 결실 맺을 수 있을까. "일단 올 시즌 4강은 자신 있다"는 것이 허 재의 생각이다. 은퇴 얘기만 나오면 머리를 감싸쥐는 허 재는 "주성이는 올 시즌보다 다음 시즌에 더욱 위협적일텐데"라며, 올 시즌이 안 되면 다음 시즌이라도 정상에 오른 후 선수생활을 마감하겠다는 각오다.
"허 재형의 승부사 기질이 부럽다"는 김주성과 "선수생활 막바지에 김주성 같은 후배와 농구를 하게 돼 기쁘다는" 허 재. 올시즌 프로농구를 뜨겁게 달구는 한국 농구가 낳은 두 거인(巨人)의 활약은 갈수록 빛을 발할 것으로 전망된다.
/원주=글 이왕구기자 fab4@hk.co.kr 사진=홍인기기자
허 재
생년월일: 1965년 9월28일
신체조건: 188㎝ 88㎏
출신교: 상명초―용산중―용산고―중앙대
가족관계: 부인 이미수(36)씨와 2남
주요경력: 1991,92,95 농구대잔치 MVP / 97∼98 프로농구 플레이오프MVP / 99∼2000 프로농구 베스트5
김주성
생년월일:1979년 11월9일
신체조건:205㎝ 98㎏
출신교:해동초―영남중―동아고―중앙대
가족관계: 김덕환(53)―이영순(44)씨 1남1녀중 장남
주요경력: 1999, 2000 농구대잔치 MVP / 2002∼2003 프로농구 신인드래프트 1순위 / 2002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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