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은 했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떨어질 줄은 몰랐습니다."200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이 개별 통보된 2일 고3 교실은 다시 한번 공황상태에 빠져 들었다. 교사들은 낙담한 제자들을 달래느라, 또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는 진학지도 기준을 고심하느라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다. 반면 재수생들은 대체로 기대를 배반하지 않은 성적표를 받아들고 일찌감치 지원할 대학과 학과를 가늠해보는 등 자신감을 내보였다.
■고3 교실은 또 다시 초상 분위기
이날 성적표를 받아든 고3 수험생들은 대부분 가채점 때보다도 평균 5∼6점씩 떨어진 자신의 점수가 도무지 믿기지 않는 다는 듯 두세 번씩 점수를 확인했다. 급기야 울음을 터뜨리거나 아예 학교를 뛰쳐나가버리는 학생도 속출했다.
서울 건대부고 박모(18)양은 "이미 수능시험 다음날 울만큼 울어서 이제는 눈물도 안 난다"며 "내 점수로 어느 학교를 지원해야 할지 그저 막막하기만 할 뿐"이라고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서울 중대부고 김모 교사는 "수시모집에 합격해놓고도 예상 수능점수보다 크게 떨어져 수시 자격기준에 탈락한 학생이 반마다 1∼2명씩 된다"며 "이 학생들을 달래다 하루가 다 갔다"고 말했다.
■재수생과 재학생의 희비쌍곡선
서울 상문고 졸업생 한모(20)군은 "모의고사 때보다 15점이나 높은 점수가 나왔다"며 "함께 재수했던 친구들 대부분이 결과에 만족해 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서울 강남대성학원 김명준(金明俊) 상담실장은 "상위권 재수생들의 평균점수가 10∼20점 정도 오른 것으로 파악됐다"며 "재수생들은 대부분 논술과 면접만 잘 준비하면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다"고 말했다. 중앙교육 이재우(李再雨) 교육컨설팅본부장은 "예상 이상의 재수생 초강세로 인해 최상위권대 인기학과의 경우 재수생 독식 현상마저 우려된다"고 전망했다.
이 때문에 아예 '고교 4년'이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마저 나타나고 있다. 경기고 정모(18)군은 "친구들 사이에서도 '재수하면 성공한다'는 말이 믿음으로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덕성여고 허혜경(許惠敬) 교사는 "내년에는 바뀐 교과서로 시험을 봐야하는 부담 때문에 실제 재수를 하는 학생은 크게 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더욱 어려워진 진학지도
일선 고교들은 수능성적 통보직후 회의를 소집하는 등 곧바로 진학지도 준비에 돌입했지만 정작 교사들은 "지난해보다 진학지도가 더 어려울 것 같다"며 난감한 표정들이다. 올해도 지난해와 같이 총점과 석차가 공개되지 않은데다, 무엇보다 성적 분포가 최상위권과 하위권으로 양분되는 현상이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서울 D고 진학담당 교사는 "학교차원에서 학생들의 점수분포에 근거해 배치표를 만들고 있으나 결국 사설입시기관의 배치표에 의지할 수 밖에 없다"며 "솔직히 아이들이 원하는 학교에 원서를 써 줄 수밖에 없어 사실상 진학 '지도'는 포기한 셈"이라고 털어 놓았다.
/김기철기자 kimin@hk.co.kr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