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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모나미 인행 송삼석 (14)풍화산업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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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모나미 인행 송삼석 (14)풍화산업 시절

입력
2002.1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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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돌아온 이후 3개월까지 삼흥사의 경영 실적은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금난을 겪게 됐다. 철광석을 수입하던 일본측에서 철분 함유량이 계약 조건과 다르다며 클레임을 거는 경우가 자주 발생했던 것이다. 월급이 나오지 않는 일이 자주 생길 만큼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실업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직원들도 하나 둘씩 회사를 떠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비록 부도 위기에 직면했지만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이었고, 내게 무역 업무를 가르쳐 준 회사였기 때문이었다.삼흥사가 문을 닫는다는 소문이 퍼지자 여기저기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 그때 나는 무역 업무에 관한 한 전문가였다. 혼자 복잡한 무역 업무를 처리해 왔으니 당연했다. 부산 시절부터 내 능력을 눈여겨 보아온 업체에서 손을 내밀었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회사가 문을 닫지도 않았는데 나 혼자 살겠다고 회사를 옮긴다는 게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달을 버텼지만 끝내 회사는 간판을 내리고 말았다. 사장은 끝까지 남아준 내게 "고맙다. 반드시 재기할 테니 그때 다시 한번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2년6개월 간의 첫 직장 생활을 마감하는 순간, 마음을 다잡아 보려 했지만 굵은 눈물 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이다. 막상 삼흥사를 나왔지만 취직할 곳이 없었다. 스카우트 제의를 해왔던 회사들은 이미 다른 사람을 고용해 버린 상태였다. 내가 일하고 싶다고 떼라도 쓰면 자리를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그리 되면 이미 취직한 사람이 쫓겨나야 했다. 취직을 못하면 못했지 그럴 수는 없었다.

한 열흘 동안 이곳 저곳 회사 문을 두들겨 봤지만 자리가 쉽게 나오지 않았다.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첫 직장생활을 하면서 모아놓은 돈도 없었고, 그렇다고 고향에 손을 벌릴 수도 없었다. '기회란 항상 찾아오지 않는다' '잘 나갈 때 어려울 때를 대비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은 것이 그때였다.

나는 낙향해 한 달여 동안 친구들과 고향 주변을 여행하며 마음을 다잡고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그러나 사정은 내려가기 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나는 거의 매일 싸구려 우동으로 끼니를 때우며 발품을 팔았다. 어려운 상황이 계속됐지만 친구 신세를 지기는 싫었다. 혹 사람을 구하는 회사가 있나 알아보려고 친구를 만날 때도 식사 시간은 피했다. 그렇게 보름 가량을 지내다 서울대 상대 동창생인 고재청(高在淸·전 국회부의장)을 만났다. 고 전 의원은 같은 호남 출신으로, 당시나 지금이나 자주 격의없이 어울리는 둘도 없는 사이다. 당시 그는 생사(生絲)업체들의 수출 업무를 대행하던 생사수출조합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마침 무역업무를 아는 사람을 찾는 회사가 있다는 연락을 해왔다. 다음날 그 회사 사장을 만나 면접을 본 뒤 바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내 두번째 직장 풍화산업이었다.

풍화산업은 양복지 원료인 소모사(梳毛絲)를 수입해 의류업체에 공급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30대 중반의 박두학 사장은 내게 무역과장 직책을 줬다. 명함에 번듯하게 '풍화산업 무역과장 송삼석'이라고 인쇄했지만 사실 부하 직원 한 명 없는 과장이었다. 풍화산업 직원은 다 해봐야 5명 뿐이었다. 때로는 사환 노릇에다 때로는 영업 활동까지 하면서 무역 업무까지 도맡아 하는 '1인 다역' 생활을 또 하다 보니 정시 퇴근은 꿈도 꾸지 못했다. 하지만 오히려 내겐 잘된 일이었다. 훗날 기업을 직접 경영하게 됐을 때 삼흥사와 풍화산업 시절 1인 다역을 하며 체득한 경험과 노하우가 큰 자산이 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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