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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다음 대통령을 기다리는 일

입력
2002.1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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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시대에 유럽 암시장에서 유고 여권은 가장 비쌌다. 비동맹의 리더로서 소련과 서방이 모두 유고의 비위를 맞추느라 유고인의 입국을 잘 허용했기 때문이다. 당시 유고는 동유럽의 선두 산업 국가였다. 비옥한 땅과 발달한 중공업으로 같은 동구권인 헝가리에 10년은 앞서고 있었다. '유고급 잠수함'이라는 말의 유래에서 보듯이 유고의 군수산업은 상당히 발달해 있었다.그러나 지금 유럽에서는 유고 여권이 길에 떨어져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비자를 받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심지어 과거 유고연방에 속했던 크로아티아 마저 유고여행자를 괄시한다. 산업수준은 헝가리보다 10년 이상 뒤처졌다. 유고가 이렇게 피폐한 이유는 1990년대 10년간 국제제재를 받으면서 나라가 고립되었기 때문이다. 유고주재 이수혁 대사와 그 나라 사정을 이야기하던 중 듣게 된 에피소드이다. 그는 국제적 고립과 경제제재라는 것이 당사국 국민에게 얼마나 가혹한 것인지를 현장에서 실감한다고 말했다. 세계정세를 잘못 읽고 엉뚱한 대(大)세르비아 건설의 야심에 빠졌던 지도자의 불찰이 나라꼴을 이렇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배경이 다르긴 하지만 제재와 고립으로 국민이 혹독하게 고생하고 국가가 피폐한 것은 북한도 비슷하다. 냉전 이후만 생각해도 북한은 10년 이상 국제적 고립과 미국의 경제제재를 받아왔다. 1994년 제네바 핵합의와 한국의 햇볕정책에 의한 지원과 인도적 국제원조가 없었다면 더욱 참담했을 것이다. 유고가 한때 그랬던 것처럼 미사일과 무기개발로 북한의 기울어지는 경제를 일으킬 수는 없다. '세계화'라는 달라진 국제 환경에서 하나의 국가로서 북한이 사는 길은 이미 답이 나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북한은 고립의 아픔과 함께 경제적 위기를 느끼며 개방을 시도하고 있다. 신의주특구는 뜻하지 않는 행정장관의 구속으로 계획이 어그러졌지만, 금강산과 개성지역을 특구로 지정하여 국제자본을 유치하고 경제의 활로를 열려 하고 있다. 그동안 북한의 움직임을 종합할 때 이러한 경제 전략은 즉흥적이 아닌 고민의 산물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경제적 고립 탈피와 더불어 북한의 당면과제는 체제 안보이다. 지금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안보를 담보해줄 주변국은 없다. 러시아는 민주체제로 변했고, 중국도 북한이 의지하기에는 경제나 정치체제가 너무 많이 변했다. 북한은 더욱 더 핵무기 개발에 집착하고 싶어진다. 북한은 그 동안 미국이 다른 어느 적대적인 국가에 주지 않았던 원조(중유)를 제공하는 것도 바로 자신들이 가진 핵무기개발 능력 때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플루토늄이든 농축우라늄 가공이든 그것은 이미 55년 전에 나온 기술이다. 북한은 남한보다 훨씬 앞서 50년대부터 핵무기 개발을 바라보며 원자력을 연구했다. 북한은 핵무기만 가지면 최소한 그들의 지정학적 여건이 군사적으로 어느 누구도 북한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대통령선거 운동이 한창인데 이상하리만치 남북문제와 핵 문제는 논의가 없다. 너무 민감해서 피차간에 건드리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다행스러운 일면이 없는 것은 아니나, 이 또한 정상이 아니다. 이 문제에 대한 두 후보의 선거전략이 아니라 마음의 자세를 유권자는 알고 있어야 한다. 텔레비전 토론에서는 국민이 판단할 수 있는 정도의 토론이 벌어져야 한다. 그것은 미국과 북한에게도 필요한 시그널이 될 것이다. 오히려 미국에서는 요란하게 북한문제가 매일 신문에 보도되고 있다. 미국정부가 예상외로 고민하고 머리를 짜고 있다는 증거이다.

개방으로 경제를 살리고, 핵 무기로 안보를 담보하고 싶은 북한 지도부를 어떻게 움직여 비핵(非核)한반도를 만들 것인가 하는 문제는 다음 대통령에게 지워진 무거운 짐이다. 12월 19일 선거가 끝난 다음 대통령 당선자가 고민하고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할 국가과제가 바로 북한 핵과 남북 문제이다.

김 수 종 논설위원s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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