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의 도청 의혹을 둘러싼 정권과 한나라당의 대립이 극한을 치닫고 있다. 1일 한나라당이 청와대 고위급 인사와 장관 등 정권핵심 인사들이 인사청탁과 검찰수사 개입 등에 나섰다는 '도청 자료'를 추가 폭로함으로써 양측은 '밀리면 끝장나는' 싸움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한나라당 김영일(金榮馹) 사무총장은 이날 "어느 한 쪽은 죽어야 한다"고 말했다.만약 이 자료의 내용이 사실로 판명된다면 여권 핵심부는 불법 도청을 했다는 점에 더해 '비리 집단'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 쓰면서 치유불능의 도덕적 상처를 입을 게 분명하다. 이를 이번 대선과 연결시켜 보면 한나라당이 '정권교체'의 폭풍을 일으킬 호기를 맞게 되는 셈이다.
한나라당은 일단 연이은 도청 공세로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와 국민통합 21 정몽준(鄭夢準) 대표의 선거공조에 쏠려 있는 여론의 시선을 돌려놓는 데는 성공했다는 평이다. 서청원(徐淸源) 대표는 "아무리 저쪽에서 억지를 부려도 이렇게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국민은 판단을 내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위험부담도 상존하고 있다. 도청 의혹의 핵심인 국정원이 도청을 했다는 확증이 나오지 않아 결국은 정쟁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그것이다. 이 경우 한나라당은 선거 판을 혼란에 빠뜨린 책임을 떠안아야만 한다. 한나라당은 3차, 4차 후속 폭로를 예고하고 있지만, 그것은 표적을 여권핵심부와 노 후보로 좁히는 내용의 변화일 뿐 자료의 출처가 국정원임을 밝히는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는 방향은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도청 파문'이 진실은 묻힌 채 공방으로만 끝날 개연성을 높이는 정황이다.
자연 정치권에는 정권과 한나라당의 극한대결에 따른 선거전의 왜곡을 막기 위해 하루빨리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그 열쇠를 쥔 한나라당 쪽에 보다 민감한 시선이 쏠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현재로선 한나라당이 보호하고 있는 '도청 자료'의 제보자를 밝히는 것 외에는 달리 길이 없다는 견해도 있다. 이와 관련, 한 당직자는 "지금은 때가 아니다"며 선거 막판 전격 공개가능성을 암시하기도 했다.
/유성식기자 ssyoo@hk.co.kr
■ 도청 2차문건 청와대관련 내용
한나라당이 1일 추가 폭로한 '국정원 도청 자료'에는 지난달 28일 1차 폭로 때와 달리 박지원(朴智元) 특보 등 청와대 핵심 실세 관련 내용이 5건이나 들어 있다. 특히 청와대 관련 내용에는 권력형 비리나 인사 개입 관련 내용이 포함돼 있어 파장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DJ, 이수동 불구속 상태하 특검조사 받도록 지시 청와대 박지원 특보는 2002.2.24(일) 이재신 민정수석에게― 특검에서 조사받고 있는 이수동 처리 문제와 관련, 대통령께서 당사자들이 금품수수에 대가성이 없다고 주장하는 데도 정치 브로커인 도승희 말만 믿고 대가성이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은 문제가 있으니 불구속 상태에서 특검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심경을 말씀하시는 등 상당한 집착을 보이시더라. 사안이 확대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달라고 당부. 이에 대해 이 수석은 대통령께서 전윤철 비서실장에게도 같은 말씀을 하신 것 같으며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차정일 특검팀과 접촉을 시도 중이라고 알림.
박지원, 장차관 및 수석·검찰인사 모두 자신이 처리했다고 언급
○○○보도국장은 2002.2.6(수) 청와대 박지원 특보에게―○○○사장이 "검찰 인사가 잘 된 것 같다"고 평가를 했다. 이번 인사가 지연된 이유가 무엇이냐고 질문. 이에 박 특보는 김학재 민정수석(법무연수원장)이 대통령에게 "대검차장이나 차관으로 가게 해달라"고 건의한 데 따른 조정 문제와 지역편중 문제 해결 등(지연사유) 있지만 대통령을 생각하는 차원에서 내가 악역을 맡아 마무리했음. 이번 장·차관, 청와대 수석, 검찰인사는 모두 내가 처리했다고 알려줌.
박지원, 김동신 장관에게 ○○○육군소장 승진 부탁
청와대 박지원 특보는 2002.2.28(목) 김동신 국방장관에게―국민의 정부 탄생을 헌신적으로 도와준 바 있는 ○○○부국장이 친형인 ○○○육군소장의 승진 주선을 요청해 왔음. ○○○소장의 승진을 검토해 달라고 부탁. 이에 김 장관은 검토는 해보겠지만 어려울 것 같다는 반응.
BH민정비서관, 국세청장과 홍걸 명의 계좌 관련대책 논의
청와대 김현섭 민정비서관은 2002.2.20(수) 손영래 국세청장에게―홍준표가 한미은행 LA지점 등에 홍걸 명의로 60만불에서 수백만불이 입금돼 있고 국세청에 계좌번호까지 제출한 적 있다고 주장했으나 청와대는 '홍 의원이 출처불명의 괴문서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고 밀고 나갈 작정임. 변호사를 통해 한미은행이 관련자료를 유출했는지 여부를 확인 중이라고 알려 줌. 이에 손 청장은 홍걸 자택 매각 자금이 한미은행에 입금된 것으로 알고 있으나, 홍 의원이 제시한 계좌번호가 홍걸 명의 통장 계좌인지, 은행측이 자료를 유출했는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반응.
박주선, 박지원에게 (주)한국신용정보 ○○○사장 유임 청탁
민주당 박주선 의원은 2002.3.2(토) 청와대 박지원 특보에게―재경부측이 재경부 출신 인사의 밥그릇을 챙겨주기 위해 자기들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단임' 명분으로 쫓아내고 있다. 한국신용정보(주) 사장은 광주고 출신으로 그 동안 경영을 잘해 온 만큼 유임을 주선해 달라고 요청. 이에 박 특보는 3월2일 진념 장관 만날 때 얘기하겠다는 뜻을 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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