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정치는 대체로 신문이나 방송과 같은 대중매체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래서 매체정치(media politics)라는 말이 생겨나게 되었다. 매체정치는 선거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대부분의 유권자는 매체를 통해서 후보들과 그들의 인물 됨됨이와 정강정책을 알게 되고, 정당과 후보는 매체를 통해 선거운동을 펼친다. 물론 후보들이 합동유세를 하거나 거리나 시장 등을 돌며 유권자들을 직접 만나 지지를 호소하는 거리 유세전을 펼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유권자가 후보를 제대로 알기 어렵고, 후보 또한 유권자의 극소수만을 접할 수 있을 뿐이다.그래서 자연스럽게 가가호호 보급된 신문이나 방송을 선거에 활용하게 되었다. 이들 매체를 통해 후보는 쉽게 다수의 유권자를 접할 수 있고, 유권자는 편안하게 후보에 대해 알 수 있게 되었다. 이 때문에 거리유세를 포함하여 오늘날의 거의 모든 선거운동은 매체 보도를 겨냥하여 계획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 선거법은 그 동안 몇 차례의 개정을 통해서 정치광고, 후보 토론과 대담, 후보 방송연설 등을 허용함으로써 선거운동에 신문과 방송을 더 많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선거보도와 함께 신문이나 방송을 활용하는 이들 선거운동 방식은 선거에서 특히 대통령 선거에서 지배적인 선거운동 방식으로 자리잡았다.
매체정치는 무엇보다 우리 정치의 고질적 병폐인 고비용 저효율 정치를 개선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매체를 활용한 선거운동은 대규모 군중유세와 같은 전통적인 방식의 선거운동보다 훨씬 더 값싸게 먹힌다. 그리고 후보와 유권자가 직접 만나는 것을 막기 때문에 선거부정도 훨씬 더 적어진다. 그래서 최근 선거관리위원회는 돈 많이 드는 선거를 개선하려는 정치개혁의 일환으로 아예 유세와 같은 전통적인 선거운동 방식을 금지하는 대신 거의 전적으로 신문이나 방송을 활용한 선거운동을 하도록 하는 선거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매체정치의 그림자도 없지 않다. 매체정치 특히 텔레비전 정치는 무엇보다 정치를 내용보다는 스타일과 이미지를 중시하는 정치로 바꾸었다. 매체정치에서 정당이나 후보가 내세우는 내용 즉 정강정책 그 자체보다는 그것을 내세우는 방식이 더 중요하다. 무엇을 내세우는 가보다는 어떻게 내세우는가가 더 중시되는 것이다. 매체정치에서는 예컨대 대통령이나 대통령 후보의 경우, 그의 식견과 정견, 직무수행 능력, 지도력 등과 같은 정치 지도자로서의 본질적인 측면보다는 그의 자세, 표정, 어투, 외모, 연기력과 같은 지엽적인 측면이 더 중시된다. 말하자면, 매체정치로 인해 정치가 알맹이보다는 포장을 더 중시하게 되었다.
이처럼 알맹이보다는 스타일과 이미지를 중시하는 매체정치는 선거에 포장과 브랜드 파워를 중시하는 상품광고의 기법이 도입되면서 더 심화되었다. 이 기법은 후보를 하나의 상품으로 취급하면서 유권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후보의 특정한 모습을 창출하는 데 치중한다. 여기서는 후보의 자질이나 능력이나 정강정책은 별로 중시되지 않거나 아예 상관이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결국 이미지 정치로 전락한 매체정치는 매우 기만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유권자는 매체정치에 의해 기만 당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잘 포장된 후보의 그럴싸한 모습이 아니라 포장 뒤에 가려진 그 후보의 진면목을 보고 선택해야 한다. 그 후보가 속한 정당의 정강정책 그리고 그 후보의 자질, 능력, 도덕성, 지도력, 식견, 정견 등을 잘 알아보고 투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문이나 방송의 선거보도, 정치광고, 후보연설, 텔레비전 토론에 비친 후보의 겉모습이 아니라 그 후보가 말한 내용을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또 신문이나 방송이 제공하는 각 정당과 그 후보의 정강정책에 관한 비교 기사도 꼼꼼히 읽는 일이 필요하다.
이 효 성 성균관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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