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이인제(李仁濟) 의원이 16대 대선을 불과 18일 앞두고 1일 탈당했다. "노무현(盧武鉉) 후보와 이념 및 정치노선이 다른 데다 추악한 정치공작의 피해자"라는 게 탈당의 변이다. 내심으로는 노 후보가 국민통합21 정몽준(鄭夢準) 대표와 단일화를 이루고 자신이 이번에 독자 출마하기 어려운 만큼 1997년과 같은 경선불복 비난이 크지 않으리란 계산을 했을 법하다.하지만 그의 주장을 십분 이해한다고 해도 몇 가지 수긍하기 어려운 대목이 있다. 우선 색깔론의 경우 이 의원 자신이 올 봄 당내 대선 후보 경선에서 세가 불리해지자 노 후보를 급진좌파라고 비난하며 들고 나왔던 낡은 소재 이다.
정치공작론도 자신이 당내 경선을 중도에 포기하면서 내세운 음모론과 대동소이하다. 특히 한나라당이 내놓은 도청 문건의 진위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상태에서 이를 불법도청이라고 단정하며 상대 정당의 손을 들어주는 것은 대선 후보까지 지낸 정치인의 올바른 태도로는 보이지 않는다.
또 한가지 유감스러운 것은 이 의원이 4월 당내 경선을 포기하면서 다짐한대로 백의종군(白衣從軍)했느냐는 점이다. 경선 때 쌓인 앙금 때문에 오히려 6·13 지방선거 및 8·8 재보선에서 민주당이 완패하자, '노 후보 용도폐기론'을 펴며 대대적 반격에 나서기까지 했다. 또 얼마 전 충청권의 자민련 김종필(金鍾泌) 총재 등 다른 정파와 연대, 신당 창당을 도모하면서 노 후보 흔들기에 나서기도 했다.
그가 새로운 정치적 대안을 모색하려 했다면 대통령선거가 끝난 뒤 당내 노선투쟁을 벌이는 것이 순서다. 그래도 자신의 뜻이 관철되지 않으면 그 때 탈당해도 늦지 않다. 이미 한 번의 경선불복 부담을 안고 있는 그가 가뜩이나 미묘한 시기에 당을 뛰쳐나간 것은 '아름다운 패자'와는 거리가 먼, 찜찜한 변절로 비칠 것 같다. 민주주의는 승패보다 승복이 더 중요하다.
박정철 정치부 기자 parkjc@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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