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타이베이시의 번화가. 교복 차림의 10대 소녀가 편의점에서 나와 버지니아 슬림스 담뱃갑을 뜯는다. 담배 한 개비를 물고 불을 붙인 후, 향수병을 열고 냄새를 맡아 본다. 담배를 사면서 받은 선물이다. 리더스 다이제스트 지난 2월호의 특집 '아시아 여성을 공략하는 담배회사들'의 시작 부분이다. 다국적 담배회사들은 교활하게도 10대 소녀를 표적으로 공격적인 판촉을 벌이고 있다. 10대 소녀 흡연율이 홍콩에서는 5년 동안 두 배로 늘었다. 한국은 80년 이후 4배, 말레이시아는 10년 사이에 5배로 각각 증가했다고 이 잡지는 보도했다.■ 담배회사들이 펴내는 '터배코 리포터'지는 아시아 여성 흡연시장의 잠재력이 엄청나다고 계산하고 있다. 1인당 담배소비의 증가와 여성흡연을 인정하려는 분위기의 상승이 새로운 수요를 계속 창출한다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 역시 다음 세대에는 개발도상국가에서 약 5억명의 여성이 흡연을 시작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한 현재 여성 흡연인구 2억명 중 절반은 흡연 때문에 사망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여성이 담배를 피우면 폐암과 심장질환 외에 태아에게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 10대들은 세련되고 부자가 되는 길 중의 하나가 흡연이라고 믿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광고에서 본 담배 피우는 남녀가 한결같이 멋지고 좋은 옷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의 음주와 흡연은 더욱 유혹적이다. KBS의 조사결과 음주·흡연장면은 시청자의 습관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음주장면을 본 후 음주욕구를 느끼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47.6%가 '그렇다'고 답했다. 10∼20대는 더 많은 숫자가 그렇게 답했다.
■ KBS와 SBS가 드라마에서 흡연장면을 추방하여 금연 캠페인에 앞장설 계획이다. 환영할 만한 변화다. 다음 추방은 음주와 선정성, 폭력장면이 되었으면 한다. 그러나 지금 SBS는 '야인시대'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11주째 시청률 1위를 기록한 이 드라마에는 매회 폭력장면이 빠지지 않고 있다. 또 KBS는 얼마 전 선정성 짙은 드라마 '장희빈'을 시작했다. 모처럼의 방송사 캠페인이 자기 장벽을 넘어 반선정성, 반폭력 고지에 도달하기를 응원한다.
/박래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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