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간의 치료비는 도대체 언제 받는 겁니까?" 지난달 19일 서울 용산구 반포대로에서 미군 차량과의 접촉사고로 전치 3주의 허리부상을 입은 한모(29)씨는 "장기 입원으로 가족 생계마저 막막하다"고 눈물지었다. 소형 트럭으로 과일행상을 하고 있는 그는 전 재산인 트럭마저 망가진 데다, 보상 길마저 막막해 앞으로 네가족의 생활고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지 고민이라고 하소연했다.■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에 멍드는 한국인
한 씨는 가해자가 한국인이었으면 벌써 해결됐을 사항이 미군과의 SOFA규정 때문에 지금의 상황이 발생했다는 것을 알고는 기가 막혔다. 미 헌병대가 가해자인 미군의 신병을 인수해 간 후 보상문제를 협의할 연락처도 알지 못하고 있다는 그는 "SOFA는 미군을 위한 방패막이 법인 것 같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경찰관계자는 "미 헌병대에 신병을 인도하도록 되어 있어 상호협조아래 수사가 마무리 되려면 최소 열흘 이상이 걸려 보상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모(35)씨도 비슷한 경우. 그는 9월 15일 새벽 3시30분께 용산구 이태원동에서 미군이 자신의 오토바이를 발로 차 우그려뜨리는 바람에 30여 만원 상당의 피해를 입었다. 그는 "미군은 경찰서에서 '미 헌병대만 기다린다'며 콧방귀도 뀌지 않더라"며 "오토바이를 이용해 퀵서비스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데 SOFA라는 잘못된 협정으로 오토바이 수리도 못해 굶어 죽게 생겼다"며 담배만 연신 피웠다.
■경찰도 미군범죄에는 속수무책
경찰도 미군 범죄사건으로 엄청난 애로를 겪고 있다. 미군들이 음주측정에 불응하거나, 사건 혐의에 대해 묵비권을 행사하는 바람에 "미군만 만나면 진절머리가 난다"고 경찰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지난달 30일 오후 10시 서울 N경찰서 교통지도계. 음주측정을 하려는 경찰관과 측정을 거부하는 미군과의 실랑이가 오갔다. 담당 경찰관은 "3회에 걸쳐 음주측정을 시도했지만 미군이 완강히 부인하며 'NO'만을 외쳤다"며 "미 헌병대가 데려가면 음주측정은 물 건너갈 게 뻔하다"고 걱정했다. 미 헌병대가 혈액채취를 통해 음주수치를 알려준다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수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고, 술을 안 마셨다고 우겨도 법적으로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서울 S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교통사고 조사과정에서 대부분의 미군들이 묵비권을 행사하며 가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며 "이때문에 국내인 교통사고 조사와는 달리 사건종결에 보통 1주일이 넘게 걸려 다른 사건은 손도 못 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더욱이 대부분의 경찰들이 복잡한 절차의 SOFA규정에 익숙하지 못해 "미군이 오지 않길 기도할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SOFA는 불평등 투성이
시민단체들은 2년전 SOFA개정으로 독일·일본과 비슷한 수준으로 되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불평등한 조항이 한 두가지가 아니라고 지적하고 있다. 당장 이번 미군 궤도차량 여중생 사망사건에서 나타났듯 살인과 강간 등 12개 중대범죄를 제외하곤 재판권을 우리측이 갖지 못하고 있다. 중대범죄라도 공무 중 발생했을 경우 수사권과 재판권을 미군이 행사하며, 공무 여부도 미군 장성이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또 질병·임신중인 미군 피의자에 대해 미국측이 재판 전 신병인도의 포기를 요청하면 정부는 이를 호의적으로 고려하도록 돼 있다. 미군 교통사고도 대물 피해보상이 건당 최소 2만5,000달러 이상의 보험에 가입돼 있으면 형사입건이 불가능하다. 한국은 통상 200만원 이상의 대물교통사고를 내면 형사 입건된다. 이외에도 미군은 고속도로통행료와 공항이용료를 면제받는 등 각종 특혜를 누리고 있다.
/최기수기자 mounta@hk.co.kr
고성호기자 sungho@hk.co.kr
■ SOFA 개정 전망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은 1966년 2월 한미 양국간에 체결돼 이듬해 발효된 뒤 91년과 2001년 2차례의 개정을 거쳤다. 2차 개정은 92년 마이클 이병의 윤금이씨 살해사건과 2000년 매카시상병의 이태원 여종업원 살해 사건 등으로 SOFA의 불평등 조항이 사회문제화하면서 가능했다. 2차 개정의 핵심은 불평등의 상징으로 지적됐던 형사재판권 자동포기조항 삭제 살인과 강간 등 12개 중대 범죄를 저지른 미군 피의자의 신병을 우리 사법당국이 구금할 수 있도록 한 점이다. 외교부는 "2차개정으로 미군 중대범죄자를 바로 구금할 수 있는 등 우리의 사법 주권이 강화됐고, 환경조항 등이 신설돼 미·독, 미·일 SOFA에 비해 손색이 없다"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여중생 궤도차량 사망사건의 책임자인 미군 병사 2명이 무죄를 평결 받음에 따라 SOFA의 불평등 문제가 다시 부각되면서 SOFA 개정이 핫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시민단체 등은 이번 여중생 사건에서 나타났듯 '공무 중 범죄에 대한 미군의 재판권 인정' '상대국 요청이 있을 경우, 특히 중요한 경우를 제외하고 재판권을 포기한다'는 규정 등 미군에 의해 악용될 수 있는 양해사항이 너무 많다는 지적이다.
국내 여론에도 불구하고 SOFA개정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미군이 완강히 반대하고 있는데다 SOFA를 담당하고 있는 외교부도 최근 공식적으로 "개정한지 불과 1년 밖에 안돼 재개정은 불가능하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미군은 "공무집행 중 사건에 대한 1차적 재판권 행사는 파견국 군대의 임무수행 및 기율유지에 필요한 SOFA의 근간에 해당되는 것으로 미국이 전세계 80여개국과 체결한 모든 SOFA에 일률적으로 적용하고 있다"며 근무 중 사건 재판권 이양의 불가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전교조 등 시민단체들은 "일본 등에서도 미군 범죄가 발생한 후 SOFA를 개정한 적이 있다"며 개정압력을 강화하고 있어 결과가 어떻게 될 지 주목된다.
/권혁범기자 hbkwon@hk.co.kr
● 전문가 의견
미군 궤도차량 여중생 사망사건에 대한 미군법원의 무죄평결을 계기로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각계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SOFA 개정 없이는 이 같은 비극은 언제라도 일어날 수 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전문가들로부터 현행 SOFA의 문제점, 올바른 개정 방향 등에 대해 들어봤다.
이장희(李長熙·법학) 한국 외대 교수=현행 SOFA는 공무수행 중 발생한 미군범죄에 대해서는 미군이 재판권을 관할토록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공무수행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인데 현행 SOFA 규정에는 미군측이 발부한 공무집행증명서만 제출하면 재판권이 미군측에 귀속된다. 미·일 SOFA처럼 공무수행 여부에 대한 최종 판단권한을 우리 법원이 갖도록 해야한다.
또한 공무수행 중에 일어난 미군범죄라 하더라도 미군측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있다고 판단될 때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권한을 명문화해야 한다. 독일이나 일본처럼 군용차량의 보험가입을 의무화하는 등 피해자들이 배상받을 수 있는 제도적 절차가 필요한 것이다.
이정희(李正姬) 변호사=형사재판의 포기에 관한 조항이 본 협정에는 한미간에 평등하게 적용할 수 있는 것으로 규정돼 있지만 부속협정인 합의의사록에는 미군측이 요청할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대한민국이 재판권을 포기토록 규정하고 있다. 미군 피의자 신병인도 시점의 경우도 2000년 개정 협상 때 '기소시 인도'로 바뀌었지만 부속협정인 합의의사록의 예외규정에 발목이 잡혀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따라서 이에 대해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사고발생시 초동수사에 관한 구체적인 협정 역시 마련돼야 한다. 이번 판결이 무죄로 결론났지만 여중생들의 죽음이 미군차량의 통신장비 이상인지 정비문제인지 제대로 밝혀진 게 하나도 없다. 미군의 수사협조, 한국의 초동수사권 확보 등을 보장할 수 있는 부속협정 개정이 뒤따라야 한다.
참여연대 정책실 박정은(朴亭垠) 간사=SOFA의 재판권 관할에 대한 규정 자체도 불평등하지만 이에 대한 운영은 더 불평등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측은 미군 당국의 재판권 포기요청에 대해 늘 호의적으로 고려하여 재판권을 포기하는 반면, 미군 당국은 우리측의 재판포기요청에 대하여 일체의 호의적 고려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재판권 포기요청이 있을 경우 이것의 적합성 여부를 판단하는 협상위원회 설치나 외교 채널에 대한 규정을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
/김명수기자 lece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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