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리베로는 그라운드에서 쉬지 않는다. 그라운드가 삶의 터전이니 힘닿는 한 뛰어야 한다. 지난달 20일 브라질과의 A매치를 끝으로 태극마크를 반납한 홍명보(33·포항)는 "미국 생활은 내 장래를 좌우할 것"이라며 과거의 영광보다 미래를 이야기했다. 미 프로축구(MLS) LA갤럭시 이적을 확정지은 홍명보를 만나 포부를 들었다.
홍명보의 서울 주소는 강남구 도곡2동 타워팰리스다. 최고급 주상복합아파트로 화제를 모은 그곳에서 부인 조수미(29)씨와 두 아들 성민(4) 정민(2) 그렇게 넷이 산다. 지난달 29일 오전 68평형 널찍한 거실에서 만난 그는 "사는 게 별반 다르지 않은데…"라며 인사말을 대신했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관리사무실측이 방문목적 확인과 상부허락 등이 필요하다며 20분 정도 기자를 잡아뒀기 때문이다. 10월28일 입주한 홍명보는 타워팰리스에서 지낸 날이 손에 꼽힌다. 갤럭시 입단절차를 밟기 위해 로스앤젤레스에서 1주일 머문 뒤 지난달 28일 귀국했고 소속팀 포항을 오가느라 비운 날도 적지 않다. 연말이면 다시 미국으로 떠난다.
"땀 흘려 번 돈이지만 분양가보다 너무 올라 부담되는 게 사실"이라는 홍명보는 "LA동포들의 뜨거운 환대를 받고 힘이 솟아났다"며 미국 얘기로 화제를 이어갔다. 미 프로야구의 박찬호(텍사스 레인저스)가 LA다저스 마운드를 누빌 때 만큼 동포들의 기대가 크다는 말을 듣는 순간 "그 이상을 해내겠다"는 도전과 성취의욕이 생겼다고도 했다.
그는 "멋진 플레이로 동포들을 축구장으로 끌어들이겠다"며 미국에서도 수비사령관으로 좋은 활약을 펼칠 것을 다짐했다.
13년 가까이 태극마크를 달고 135차례의 A매치를 소화한 한국축구의 산증인 홍명보에게는 영광과 좌절이 끊임없이 따라다녔다. 4번 연속 밟아본 월드컵 무대에선 더욱 그렇다. 그러나 좋은 기억만 남기고 싶다고 했다. 승부차기까지 간 한일월드컵 스페인과의 8강전서 마지막 키커로 네트를 가른 뒤 활짝 웃을 때의 기분은 "그야말로 짜릿했다"고 했다. 지난해 무릎 피로골절과 월드컵 대표선발 문제가 맞물릴 때가 굳이 꼽자면 가장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밝힌 그는 그러나 좌절은 없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2년 정도 뛰면서 스포츠 마케팅과 선수관리 등을 배우겠다는 홍명보는 "최종 목적지는 유럽"이라고 새삼 강조했다. 잉글랜드 등에는 지도자 수업과 축구행정을 동시에 가르치는 곳이 많다면서 "제대로 배우고 국제무대에서 자기 뜻을 펴려면 영어는 기본"이라고 했다.
특유의 카리스마를 지닌 그는 "후배는 너나 가릴 것 없이 모두 소중하다"면서 "외국 무대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실력을 다듬는 데 최선을 다해 주길 바란다"고 충고했다.
국가대표 은퇴 뒤에도 미국과 유럽 생활의 꿈을 키우고 한국에서 또다시 세계적인 지도자와 행정가로 봉사하고 싶다는 홍명보, 그는 진짜 영원한 리베로다.
/글=이종수기자 jslee@hk.co.kr
사진=원유헌기자
생년월일: 1969년 2월12일 서울생
신체조건: 183㎝ 72㎏
포지션: 중앙수비수 리베로
축구입문: 광장초 5년(79년)
출신학교: 광희중·동북고·고려대(87학번)
소속: 상무·벨마레 히라스카·가시와 레이솔·포항
경력: 한일월드컵 브론즈볼, 세계올스타
A매치 데뷔: 90년 2월 노르웨이전
A매치 성적: 135경기 9득점
가족관계: 조수미씨와 2남
■ 부인 조수미씨
조수미씨는 인터뷰 도중 성민·정민 두 아들이 연신 '아빠'를 외쳐대자 "떨어져 지낸 날이 너무 많아 그런지 아빠를 더 좋아하고 따른다"며 말문을 열었다.
94 미국월드컵을 앞둔 현지 훈련 때 재미동포 여대생으로 홍명보를 만나 3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한 조씨는 "명보씨는 매사 빈틈없는 성격이라 뭐든지 잘 해내리라 믿는다"고 강조했다.
10년 지기 황선홍(34·전남)이 자서전에서 "명보는 겉은 우아하고 속은 우직한 사람"이라고 한 표현은 적절한 것 같다고 말했다.
조씨는 "지난해 4월 J리그 가시와에서 뛸 때 히로시마와의 홈경기서 2―1로 이긴 뒤 병원에 실려간 적도 있다"며 "40도의 고열 속에서도 동포들을 실망시키지 않아야 한다며 그라운드에 나서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뭉클했다"고 전했다.
미 프로축구에서는 여기에 더해 "끝이 좋아야 모든 게 좋다"는 말처럼 축구선수로 대미를 화려하게 장식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조씨는 태극마크를 달아야만 애국하는 게 아니라는 남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남편의 활약이 동포사회의 구심역할은 물론 꿈과 희망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조씨는 "남편은 유소년축구에도 관심이 많다"며 "지도자로서도 세계적 명성을 쌓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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