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항기를 겨냥한 미사일 테러가 현실화했다. 28일 케냐 뭄바사 국제공항을 이륙한 이스라엘 아르키아 항공 소속 보잉 757 여객기를 향해 발사된 미사일은 러시아제 SA-7로 밝혀졌다. 미사일 공격은 하이재킹(납치)이 주류였던 대 민항기 테러의 새로운 유형으로 자리잡을 우려가 커졌다.휴대용 견착식 지대공(SA·surface-to-air) 미사일인 SA-7의 러시아식 이름은 스트렐라-2다. 1967년 구 소련 당시 양산된 이 미사일은 당초 레이더를 피해 저공 비행하는 전투기나 헬기를 공격하기 위한 무기였다. 지금도 체첸 반군들이 러시아 헬기를 공격할 때 많이 사용하고 있다. 휴대용 견착식 미사일이 위협적인 것은 소형이라 사전에 들키지 않고 공격을 막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SA-7은 발사관과 미사일 동체를 포함한 전장이 1.5m에 불과해 골프 가방에도 숨길 수 있다.
이번 테러 발생 후 공항에서 약 2㎞ 떨어진 곳에서 미사일 발사관 1개와 미사일 케이스 2개가 발견됐다. 테러범이 경비가 심한 공항 구내를 피해 인근 지역에 잠복했다가 이륙 직후의 항공기를 노린 것이다.
더 큰 문제는 SA-7과 개량형 SA-9 미사일을 알 카에다 등 테러집단이 조직적으로 운용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미국 CNN 방송은 28일 알 카에다가 SA-7 미사일 사용법을 담은 비디오 테이프를 제작해 조직원을 교육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SA-7, SA-9 미사일은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다수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케냐의 한 관리는 심지어 "슈퍼마켓에서도 구할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휴대용 견착식 미사일이 세계적인 밀매 시장을 이루고 있다고 경고했다.
SA-7은 적외선 열추적 방식이긴 하지만 유도장치가 정교하지 못하고 구식이라 장거리에서는 명중률이 떨어진다. 그러나 과거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반군에 제공한 같은 견착식의 최신형 스팅어 미사일은 고도의 명중률을 갖고 있어 이것이 테러범들에게 들어갈 경우 매우 위험할 수 있다.
미사일을 이용한 민항기 테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스리랑카 타밀 반군은 1998년 자프나 반도에서 SA-7로 추정되는 미사일로 여객기를 격추시켜 승객 52명이 사망했다. 지난해 6월과 올해 5월에는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군용기를 표적으로 휴대용 견착식 미사일이 발사됐지만 명중하지는 않았다. 이번 테러에서 미사일이 빗나간 것은 테러범들의 훈련 부족이 원인일 수 있다. 일부에서는 목표가 된 아르키아 항공이 이스라엘 국영 엘알 항공 여객기처럼 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장착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확인이 되지 않고 있다.
항공업계는 당장 비상이 걸렸다. 전투기에서처럼 섬광탄을 비롯한 표적 교란용 시스템을 민항기에 장착하는 방법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한 대당 30억∼40억 원 정도가 들고 모든 종류의 미사일을 다 막아낼 시스템을 갖추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방어 시스템을 장착한다 하더라도 속도가 느리고 덩치가 큰 민항기는 여전히 미사일 공격에 취약하다. 전문가들은 공항 주변의 정보수집 능력과 보안강화가 최선책이라고 강조했다.
/배연해기자 seapower@hk.co.kr
■지상·공중 동시테러 누가?
알 카에다인가, 팔레스타인 과격 단체인가.
28일 케냐에서 발생한 이스라엘 여객기 및 호텔 동시 테러 직후 알 카에다가 배후일 것이라는 관측이 대세였지만 한 팔레스타인 과격단체가 자신들의 범행임을 주장하고 나서 혼선이 일고 있다.
알 카에다의 소행이라는 관측은 존 말란 사웨 이스라엘 주재 케냐 대사가 처음 제기했다. 그는 "케냐에는 이런 공격을 초래할 국내 문제가 없다"며 알 카에다의 소행으로 단정했다. 이스라엘 보안 소식통들이나 국제 테러 전문가들도 항공기와 호텔 동시 테러는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일사불란한 조직이라야 감행할 수 있는 것이라며 알 카에다를 의심하고 있다.
이들은 알 카에다가 1990년대 뭄바사를 비롯해'아프리카의 뿔'로 불리는 동아프리카 지역에 광범위한 활동 기반을 구축했다는 점, 알 카에다의 지휘자 오사마 빈 라덴이 12일 녹음테이프에서 미국의 동맹국들에 대한 테러를 경고했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고 있다.
이스라엘과 분쟁 중인 팔레스타인 단체나 레바논에 거점을 둔 친 이란계 헤즈볼라 등 다른 이슬람 과격단체의 소행일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됐다. 벤야민 네탄야후 이스라엘 외무장관은 그동안 팔레스타인 테러 단체들이 대공 미사일 입수를 시도해 왔으며, 헤즈볼라는 이미 이를 확보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번 테러와 유사한 유형의 테러가 레바논에서 이미 시도됐었다는 점도 근거로 제시됐다.
'팔레스타인군-세계 팔레스타인 망명정부'라는 팔레스타인 단체가 이번 사건을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자처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신빙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단체는 "시오니스트의 테러행위를 부각시키기 위해 두 단체를 보내 공격을 수행토록 했다"고 주장했다.
현재로서는 결론을 내리기에는 증거가 부족한 상황이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백악관 대변인을 통해 "이번 테러와 관련해 알 카에다를 배제하거나 포함하는 것은 모두 아직 성급한 것"이라고 말했다.
CNN은 이스라엘 군이 호텔 자살폭탄 테러범 3명 중 1명의 신원을 압둘라 아흐메드 압둘라로 밝혀냈으며 이 이름은 미 연방수사국(FBI)이 알 카에다 테러리스트로 수배 중인 사람과 같다고 보도했다.
케냐 경찰은 미국 여권을 소지한 여자 1명을 포함한 아랍계 외국인 3명을 용의자로 체포한 데 이어 관련자 9명을 추가로 검거, 조사를 벌이고 있다.
/남경욱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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