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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움직인 이 책] 김찬삼의 세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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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움직인 이 책] 김찬삼의 세계여행

입력
2002.1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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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전공에 영향을 미친 책들을 꼽아보면 의외로 전공 서적은 드물다. 오히려 인문서적이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예를 들어 프레리의 '피압박민의 교육학'은 도시와 건축문화의 계층성을,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는 전통 풍수지리의 패러다임적 구조를 깨닫게 해주었다. 이렇게 따지다가 생각의 빚을 진 책들을 추적해 보기로 했다.양파를 까는 것 같이 한겹 한겹 과거의 껍질을 벗길 때마다 그 껍질들 사이에는 중요한 몇 권의 책이 있었는데, 드디어 마지막 속살에 박혀있는 책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랐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김찬삼의 세계여행'이 건축을 접하게 했던 최초의 책이었기 때문이다.

중학교 시절, 해외여행이란 특별한 사람이나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고, 세계는 다가갈 수 없게 닫혀있는 곳이었다. 그 어두웠던 시절에 김찬삼은 몇 차례나 세계일주를 했던 기인이었다. 그가 십여년에 걸쳐 쓴 여행기들은 모두 8권으로 출간되었고, 우리 집 소장본 가운데 가장 자랑스러운 책 가운데 하나였다. (물론 이 책 외에는 내가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지만.) 우선 외국 풍물에 대한 호기심을 채워주었고, 저자의 고생스런 무용담들이 용기를 주었으며, 구수한 글들에서 만만찮은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적어도 꿈 많던 중학생에게는 그랬다.

몇 번이고 읽다 못해 아예 책에 실린 이국의 사진들을 베껴 그리기 시작했고, 몇 십장을 그려 가는 과정에서 그 경치들이란 자연이 아니면 건축물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동화같은 유럽의 고성들, 부럽기만한 뉴욕의 마천루들도 대단했지만, 무엇보다 충격은 브라질의 신수도 브라질리아의 건축들이었다. 이처럼 초현실적인 도시와 초현대적인 건축을 설계할 수 있으면 얼마나 멋질까 꿈을 꾸었고, 그 꿈이 잠재했다가 전공 선택에 큰 역할을 한 것도 같다.

이제는 절판되어 헌책방에서나 접할 수 있고, '먼나라 이웃나라'가 그 자리를 점하고 있다. 세련되고 전문적인 여행서들이 가득한 지금 본다면 아주 촌스러운 책이겠지만, 이 책을 통해 세계의 다양함과 역사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으니, 건축 역사학을 전공하고 있는 내가 지고 있는 빚 중에서도 초대형 부채라고 할 수 있다.

김 봉 렬 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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