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벵 레네 지음·신이현 옮김 이마고 발행·1만5,000"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땅이 꺼져 버린다 해도/ 그대만 날 사랑한다면/ 두려울 것 없으리."(샹송 '사랑의 찬가'에서) 에디트 피아프(1915∼1963)는 그가 불렀던 노래 그대로 살았다. 키 150㎝가 채 안 되는, 예쁘지 않은 샹송 가수는 잘생긴 남자에게 한눈에 반하곤 했고, 그 남자를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도록 옭아맸으며, 지친 남자가 떠나버리면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곤 했다. 한 남자를 사랑하는 동안 피아프는 그것이 마지막인 것처럼 온 힘을 다했다. 그리고 노래를 불렀다. 수많은 사람들을 매혹시킨 그의 목소리는 사랑의 상처로부터 울려나오는 것이었다. 그의 목소리가 그의 삶이었다.
전기 작가 실벵 레네가 1999년에 펴내고 소설가 신이현씨가 번역한 평전 '에디트 피아프'는 40여 권에 이르는 피아프에 관한 책 가운데 가장 진실에 근접했다는 평가를 받는 책이다. 세기의 가수의 일생은 자신을 사랑하고 행복하게 해줄 남자를 찾아다니는 여정이었다. 17세에 만난 배달원 소년과의 동거가 시작이었다. 피아프에게 노래를 만들어 주고 교양을 가르쳐준 작사가 레몽 아소와의 관계는 사랑이 끝난 뒤에도 우정으로 맺어졌다. "나는 피아프보다 영혼을 아끼지 않는 사람을 본 적 없다"고 말한 시인 장 콕토는 피아프 평생의 친구였다. 부두 노동자였던 이브 몽탕과 캬바레를 전전하던 그리스인 조르주 무스타키는 피아프의 도움으로 최고의 가수가 되었다. 언제나 연인과 함께 무대에 오르길 원했던 피아프는 연인에게 혹독한 훈련을 시켰으며, 폭발적인 애정과 아낌없는 도움을 쏟아부었다.
작고 초라한 외모로 콤플렉스에 시달렸던 피아프였지만, 신비롭게도 무대에 올라 입을 여는 순간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여성이 되었다. '장밋빛 인생'이나 '난 아무 것도 후회하지 않아' 같은 평범하고 단순한 노래가 사람들을 흥분시켰다. 피아프의 목소리는 청중의 귀에 호소하지 않았다. 그는 노래로 영혼을 뒤흔들었다. 피아프의 노래는 지독한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유명한 '사랑의 찬가'가 그러했다. 1947년 미국에서 만난 헤비급 챔피언 마르셀 세르당과의 열애 뒤에 나온 노래였다. 세르당은 피아프에게 '인생의 첫번째 진정한 사랑'이었다. 세르당의 처자식 때문에 괴로워하면서도 피아프는 권투선수를 불처럼 사랑하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세르당이 비행기 사고로 죽은 뒤에야 불꽃이 사그라들었다.
1961년 두번째 진정한 사랑을 만났다. 26세 연하의 그리스 청년 테오파니 랑부카스였다. 온순한 남자 미용사에게 피아프는 기댈 수 있는 어머니였고 돌봐줘야 할 아이이기도 했다. 언제나 그러했듯 연인과 함께 무대에 오르고자 사납고 가혹하게 노래 연습을 시키는 피아프에게 젊은 남자는 울면서도 순종했다. 랑부카스는 피아프 인생의 마지막에 함께 했던 따뜻한 동반자였다. 세상을 떠날 때까지 피아프의 확신은 흔들리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것을 알 때 나는 절대 착각하지 않아요. 내가 원하는 남자는 바로 테오예요." 시인 자크 프레베르의 말이 맞았다. "에디트의 초상을 그리기 위해서는 하나의 재료만으로도 충분하다. 그것은 사랑이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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