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시로스 출판사 엮음·이희정 옮김 웅진북스·1만 2,500원"옛날에 한 나무꾼이 장터에 가다 숲에서 길을 잃어버렸대" "어, 지난번엔 나무를 하러갔다고 했잖아요." 아이들은 이야기를 잘 기억한다. 그러면서도 늘 얘기를 해달라고 조른다. 아이들에게 동화란 대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그래서 이런 구전 동화가 얘기할 때마다 달라지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것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면 옛날 얘기를 하는 엄마의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질 수 있을 텐데.
'세계의 지혜로운 49가지 이야기'는 프랑스 시로스 출판사의 구전동화 시리즈 30권 중 60편을 발췌, 단행본으로 발표한 것 중 된 각운이나 말장난을 이용, 프랑스어를 알지 못하면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는 몇 편을 추려내고 49편의 이야기만 뽑았다. 미국과 유럽의 낯익은 동화 대신 아시아 아프리카 구석구석에서 전해지는 이야기의 나라로 여행을 떠나는 길은 꽤 유쾌하다. 특히 이야기를 이해할 만한 아이 연령대와 '중요한 말' '장소'등을 이야기마다 표시해 놓아 부모와 아이가 이야기를 읽은 뒤 이야기를 나누는 데 좋다. 물론 '중요한 말'이란 정답이 아니라 힌트에 불과하다.
'큰 전쟁이 일어나자 왕은 적군을 무찌르는 이는 공주와 결혼시킬 것이라 약속했다. 드디어 적군을 후퇴시킨 용감한 장수가 나타났는데, 알고보니 그것은 말(馬). 공주가 아버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말과 결혼하겠다고 선언하자, 왕은 말을 토막내어 죽여 버렸다. 어느 날 큰 바람이 불고 공주가 사라졌다.
아홉달 후 병사들은 나무 위에 걸쳐진 말의 가죽을 찾아냈고, 그 안에서 머리는 말처럼 생겼고, 공주처럼 하얀 피부를 가진 벌레를 발견했다. 그건 바로 누에였다.' 우리나라의 민담 '누에 이야기'다. 이 이야기의 중요한 말은 '비단'이다. 이야기를 읽어주고 난 다음에는 이렇게 질문해 보자. "자, 누에는 어떤 벌레일까"라고 말이다. 이걸로 끝은 아니다. 또 다른 중요한 말로는 '약속'이 될 수도 있다. "왕은 왜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까"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우리 아가는 언제 엄마(아빠)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등등. 아이는 아마 상상도 하지 못할 말을 할지도 모른다.
아름답고 예쁜 얘기로만 채워지지 않았다는 점도 꽤 높이 살 만하다. 이집트의 이야기 '운 나쁜 구두 수선공'을 보자. '천국에 가고 싶었던 왕은 가난한 구두 수선공을 보고 신하를 시켜 그에게 뱃속에 금화 100개를 넣은 칠면조 구이를 주었다. 그러나 옆집 사는 이불 장수는 그에게 일주일치 빵을 살 수 있는 50푼만을 주고 칠면조와 바꾸었다.
구두수선공이 여전히 가난한 것을 본 왕은 이후 금화 200개가 든 거위고기, 금화 300개를 넣은 양을 차례차례 주었으나 모두 같은 방식으로 이불 장수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사정을 알게 된 왕은 구두수선공은 성의 꼭대기 방에 위치한 보물 창고에서 돈을 마음대로 가져가라고 명령했다. 수선공은 돈을 들고 나왔지만 가방이 너무 무거워 높은 데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 대부분 동화에서 모든 불행한 사람은 '결국은 행복하게 살았다'고 하지만 이 이야기는 과감히 '불행'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이가 성장한다는 것이 결국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감정을 겪는 과정이라면 조금 일찍 행복과 불행 사랑 약점 복수 재치 등 다양한 주제에 관해 이야기하는 버릇을 들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새로운 이야기들이 많아 어른이 읽기에도 지루하지 않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